[엄마와 죄책감②] '선'과 '법'의 경계에 놓인 베이비박스


유기 해당할 수도…기소 사례 중 무죄 단 한 건
전문가도 찬반 엇갈려…"미혼모 국가 지원 늘려야" 공감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 베이비박스의 모습. /김세정 기자

미등록 출생아동이 사회문제화되면서 '베이비박스'도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유기를 부추기는 불법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엄마들은 번민 끝에 위험에 처한 아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로 이곳을 찾는다. <더팩트>는 베이비박스의 '산파'인 이종락 목사의 인터뷰와 찬반 논란을 둘러싼 전문가들의 견해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주>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비 오는 밤, 소영은 아기 우성이를 교회 베이비박스 앞에 놔둔다. 빚에 시달리는 상현과 보육원 출신 동수는 돈을 받고 팔아넘기려 우성이를 몰래 데려간다. 이튿날 다시 교회를 찾은 소영은 우성이가 없어진 사실을 알고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좋은 부모를 찾아주고, 돈도 나눠주겠다는 상현과 동수의 제안에 함께 여정을 떠난다. 그리고 수진과 이형사가 이들을 현행범으로 잡기 위해 뒤쫓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박스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베이비박스에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소영과 동수 등은 베이비박스가 있어 아기를 버리는 사람이 생긴다는 반면 딱 한 사람, 상현은 그렇지 않다. 그는 "그 박스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는 건데. 우성이는"이라며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상현은 인신매매범으로 악인이나 선하게 묘사된다. 형사 수진은 정의로워야 하지만 때로는 범행을 유도하고, "키우지도 못할거 면서 왜 낳았냐"며 날을 세우기도 한다. 이들은 모두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오묘한 경계에 놓인다.

현실 속 베이비박스도 모호한 경계선에 있다. "베이비박스가 있어서 생명이 보호되는 것일까, 버려지는 아기가 생기는 걸까"라는 질문은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처럼 무한루프에 갇히게 한다. 상현처럼 순기능을 믿는 사람도 있지만, 유기를 조장한다거나 근원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주장이 수년째 첨예하게 대립한다.

브로커에서 소영이 우성을 베이비박스에 놔두는 모습. /유튜브 채널 CJ ENM Movie 갈무리

엄밀히 말해 베이비박스는 합법적 시설이 아니다. 현행법상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는 것은 유기 등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보호 의무가 있는 부모가 아이를 유기한 경우 유기죄가 인정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영아유기죄가 적용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영아유기의 경우도 일반 유기로 처벌이 강화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이 지난달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실제 법원도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놔둬 기소된 이들에게 대부분 유죄를 선고했다. 대체로 징역형의 집행유예였다. 지난해 청주지법 영동지원은 아들을 베이비박스에 놔둔 친모에게 "엄마로서의 책임을 포기하려고 한 범행은 절대 합리화될 수 없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법원은 베이비박스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라는데 대체로 동의했다.

기소된 사례 중 무죄 판결은 단 한 건 이었다. 서울중앙지법은 편지와 함께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놔둔 친모 A씨에게 지난해 7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교회에는 항상 (아기들을 돌볼) 사람이 상주하고 있던 사실, 아이를 놓아두고 장소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담당자와 상담을 거쳐 맡긴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 사건을 담당했던 연취현 변호사는 "유기의 정의가 보호 대상을 보호 없는 곳에 두는 것이다. 베이비박스는 보호가 있는 곳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비박스를 찬성하는 이들은 '법'의 여부에 앞서 '선'에 먼저 공감한다. 베이비박스를 설립한 이종락 목사는 "밖에 아이를 놔두면 위험하니까 걱정 없이 안전히 갖다 놓으라는 것이다. 이들을 (베이비박스가)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보호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양승원 주사랑공동체 사무국장은 "우리는 늘 이상적 사회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경우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상당히 높은데 이런 상황에서 이상만 계속 외칠 순 없다"며 "현실과 이상이 부딪힐 땐 현실을 따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선'에 따른 부작용이 분명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영아유기를 조장하는 면도 있다는 데 공감했다. 그는 "먼저 아이를 키울 형편이 왜 안되는지 먼저 보고, 정말 못 키우는 상황이 되면 미혼모 시설에 가서 상담을 받고, 어떠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키울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도 출생신고를 하고, 상담과 지원을 받으면 양육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로 생명을 살린다는 주장과, 유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은 수년째 첨예하게 대립한다. /김세정 기자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자. 우성이의 새 부모를 찾는 여정을 통해 소영과 상현, 동수는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동수와 상현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소영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누구에게나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감동적인 이 말보다는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낳기 전에 죽이는 게 죄가 더 가벼워?", "왜 엄마들한테만 뭐라고 하는데. 아빠들한테도 똑같이 말해"라는 소영의 대사가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하는, 무거운 사회적 담론이 깔려 있는 말이다. 소영의 항변을 곱씹어 보면 비 내리는 밤, 우성을 베이비박스 앞에 놔둔 행동을 비난하기 어렵다.

베이비박스 논쟁에서 찬반을 떠나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사회 구조적 문제로 베이비박스라는 하나의 모호한 결론이 도출됐다는 점이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엄마들이 임신으로 힘들 때 의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없다. 공적 지원 체계가 없어서 당장 애를 키우고, 갈 데가 없으니까 엄마들이 베이비박스에 가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민정 대표도 "저출산 시대에 국가에서는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지만 막상 임신과 출산을 하는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한다. 이들이 정말 뭐가 필요한지 물어보고 맞는 지원을 해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승원 사무국장도 베이비박스의 '소멸'을 원한다. 그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미혼모에게는 국가적 지원이 먼저 돼야 한다. 국가가 나서 미혼모에 대판 편견을 없애고, 이들이 아이들을 케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부분을 점차 늘려 복지국가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박스 찬반 여부를 떠나 미혼모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김세정 기자

법률가들은 대체로 베이비박스에 대해 처벌 또는 수사가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을 낸다. 특히 최근 경찰이 출생 미신고 아동 수사와 관련해 베이비박스 사례까지 들여다본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누가 보호받아야 할 사람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산모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완벽하다면 괜찮겠지만 키울 수 없는 환경이라서 (아이를 맡기지 않겠나). 가정에서 키울 수 없다면 아이의 생명을 지켜야하기 때문에 적극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처럼 경찰서, 소방서 등 관공서에 아이를 위탁하면 국가가 절대적으로 보호해 주는 '안전한 아이 피난처법(Safe Haven Law)' 같은 것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인 장윤미 변호사는 "법정형을 높이고, 처벌에 방점을 두는 것은 근원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맡기는 엄마들은 아기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활용하는 것인데 과연 유기죄로 살피는 것이 맞냐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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