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채영 기자]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법원의 판결을 놓고 정치권이 비난을 이어가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례적 판결이기는 하나 정치 성향이 개입된 판결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박병곤 판사는 지난 10일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정 의원에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구속 사유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며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정 의원은 2017년 9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 전 대통령 부부가 부부싸움 끝에 권양숙 여사가 가출을 했고, 노 전 대통령은 혼자 남아 있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에 앞서 검찰은 정 의원에게 벌금 500만 원의 약식기소 명령을 내렸으나 법원은 심리가 필요하다며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결심공판에서도 검찰은 약식명령과 같은 500만 원을 구형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으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정 의원이 올린 글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는 거짓이었다"며 "당시 공인 신분이 아닌 노 전 대통령 부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의 글 내용은 악의적이고 경솔한 공격에 해당한다"며 "그 맥락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보호받을 수도 없다"고 질책했다. 정 의원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판결 직후 여당은 재판부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며 비판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13일 '판결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멋대로 쓰는 정치의 장이 아니다'라는 논평을 통해 박 부장판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과거 박 판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2003년 "만일 그들(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고 싶으면 불법 자금으로 국회의원을 해 처먹은 대다수의 의원들이 먼저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옳다", 2004년 "천대 만대 국회의원 해 먹기 위해서 대통령을 탄핵시킨 새천년민주당, 한나라당 녀석들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는데 이를 두고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여당의 비판이 계속되자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은 입장문을 통해 "일부 언론에서 거론하고 있는 게시글의 경우 게시글에 나타난 작성 시기 등을 고려하면 그 일부 내용만을 토대로 법관의 사회적 인식이나 가치관을 평가할 수 없다"며 "SNS 활동만으로 법관의 정치적인 성향을 단정 짓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고 밝혔다.
또 "이런 방식의 문제 제기는 재판장뿐만 아니라 형사재판을 담당하는 모든 법관의 재판절차 진행 및 판단 과정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사법권 독립이나 재판 절차에 대한 국민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이례적이라고 봤다. 특히 명예훼손의 경우 벌금형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법무법인 정향 이승우 변호사는 "검찰의 벌금형 구형을 징역형으로 뒤집은 건 다소 이례적인 판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형은 '사회와의 격리'라는 의미에서 정치인의 발언이 실형을 선고받을 정도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사회와의 격리가 필요한 사안인지는 의문"이라며 "사회가 과도한 엄벌주의로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판결 하나로 재판부의 정치 성향을 판단하는 건 무리라는 의견이다. 이 변호사는 "법관 개인도 사람이니 정치 성향이야 있겠지만, 오히려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 정치 성향을 개입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고 본다"며 "항소심 판단을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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