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이렇게 더운데 벌써 가을이라니 믿기지 않네요. 유명무실해진 거 아닌가요?"
8일, '가을을 알린다'는 절기인 입추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전국에 폭염이 계속됐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출근길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들은 더위에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도 뙤약볕이 강했다. 시민들은 손으로 햇볕을 가리거나 양산을 펼쳤다. 손부채질을 하거나 손선풍기로 더위를 식히는 이들도 있었다.
증권회사에 다니는 유모(42) 씨는 "집에서는 전기요금이 신경 쓰여 에어컨을 오래 틀어놓지 못한다. 회사가 시원해 오히려 회사에 빨리 간다"며 걸음을 재촉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도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으로 올랐다. 강원영동과 경북북동산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됐다.
직장인 대다수는 더위에도 긴 바지를 입고 있다. 서울 금천구에서 왔다는 송모(29) 씨는 "안 그래도 더운데, (출근길) 지하철에 있을 때는 숨이 막히는 것 같다"며 "플랫폼에 있었는데 더운 공기가 확 몰려와 그 자리를 도망치듯 나왔다. (더위 때문에) 짜증이 많이 나고 괜히 화를 내서 업무에 지장이 갈 때도 있다"고 말했다.
또 회사 내 '에티켓' 때문에 긴바지를 입을 수 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회사에서 허락한 가장 시원한 복장을 입고 있는 것"이라며 "유럽도 최근 반팔, 반바지를 입는 추세라고 한다. 기후가 빠르게 변하는 만큼 사회 내 복장 규율도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미디어 업계 종사자 권모(25) 씨도 긴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권 씨는 "반바지를 못 입어서 불편하다"며 "에티켓 문제라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덥다"고 토로했다.
대표적인 어르신들의 쉼터인 종로3가 탑골공원에선 10여 명의 노인들이 무더위 속에서도 장기를 두고 있었다.
대부분은 반팔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하지만 더위 탓에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서울 은평구 연신내에서 왔다는 A(65)씨는 "집에 있으면 할 게 없어서 나왔다"며 "(탑골공원에 오면) 장기도 두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니 좋다. 덥긴 하지만 요즘은 안 더운 곳이 없지 않냐"고 말했다.
조남철(60대) 씨도 "체질이 더위를 안 타는 체질이다. 이렇게 나와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이야기도 해야 한다"며 웃었다.
다만 "근처에 쉴 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텐트 같은 걸 쳐놓거나 선풍기라도 몇 대 제공되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부 어르신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냉커피를 뽑아 마시기도 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왔다는 우모(65) 씨는 "너무 더워서 커피라도 마시려고 한다"라며 "그래도 그늘에 있으면 시원한 편"이라고 말했다.
6호 태풍 카눈이 한반도에 북상하면서 폭염의 기세는 한층 누그러질 전망이다.
카눈의 영향으로 9일 오전 강원영동과 경북북부동해안, 제주도를 시작으로 전국에 강한 비가 내리겠다. 오후에는 충청권과 남부지방, 밤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비가 확대된다. 11일 오전까지 이어지는 비로 폭염특보는 차차 해제되겠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