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가수 유승준(미국 이름 스티브 승준 유) 씨의 한국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한 정부 처분을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지만, 행정소송 특성상 유 씨의 입국이 성사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국을 상대로 민형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지만 국내 이미지를 고려할 때 이 같은 선택을 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9-3부(조찬영 김무신 김승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유 씨가 주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를 상대로 낸 여권·사증(비자) 발급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병역 기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후천적으로 취득해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체류자격을 부여해서는 안 되지만 그가 38세가 넘었다면 체류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유 씨가 비자를 신청한 시점은 2015년이라 옛 재외동포법이 적용되는데, 해당 법은 38세부터는 병역 기피를 이유로 한 비자 발급 제한이 풀린다는 단서 규정을 뒀다는 이유에서다. 2017년 개정 재외동포법에선 그 연령 기준이 41세로 높아졌다.
재판부는 "이러한 단서규정은 병역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한 사람과의 형평을 도모하기 위해 입영 의무가 최종 면제되는 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외국 국적 동포의 체류자격 부여를 금지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신청 당시 38세가 넘었던 원고의 신청을 피고가 구법 병역 규정이 아닌 일반 규정을 들어 거부하려면 병역 기피 행위와는 별도의 행위와 상황이 있어야 한다"며 "처분서에서 그러한 별도의 행위 내지 상황에 관한 언급을 찾을 수 없어 부적법하다"라고 판단했다.
이에 앞서 유 씨는 병역 의무를 피하려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가 2002년 한국 입국이 제한됐고, 재외동포 비자를 받아 입국하려 했지만 발급이 거부되자 2015년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주 LA 총영사관이 재량권을 행사하지 않고 유 씨의 비자 발급을 거부한 것은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판단해 유 씨가 최종 승소했다.
하지만 유 씨는 이후 비자 발급을 또 거부당했고, 이 처분이 대법원 판결 취지에 어긋난다며 2020년 10월 두 번째 소송을 제기했다. 외교 당국은 앞선 소송 확정판결이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취지로, 비자를 발급하라는 것은 아니었다며 이번엔 적법한 절차에 따라 발급을 거부했다고 맞섰다. 두 번째 소송의 1심은 외교 당국의 주장이 옳다고 보고 유 씨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항소심은 이를 뒤집었다.
2차 소송에서도 청신호가 켜진 유 씨지만 소송 결과와 외교 당국의 처분은 또 다른 문제라 입국을 확신할 수는 없다. 행정소송은 과거 처분을 취소할 뿐 외교 당국의 새로운 처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없다. 행정소송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행정소송 판결은 기속력이 있지만 행정청 처분을 강제할 수는 없다. 법원 판결과 행정 실무는 또 다른 문제"라며 "유 씨로서는 외교 당국이 거부 처분을 할 때마다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무한 루프'에 갇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유 씨의 비자 발급을 뒷받침하는 판례가 쌓였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외교 당국 또는 국가를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는 "민사적으로는 행정청의 재처분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형사적으로는 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은 당국 관계자들에게 직권남용죄를 물을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국내 이미지 관리도 중요한 유 씨가 한국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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