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금 공탁 신청을 법원이 연이어 받아들이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법리상 승복하기 어렵다"며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민법상 제삼자의 채무 변제는 당사자가 반대 의사를 표시할 시 이뤄질 수 없다고 규정한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광주지법과 전주지법, 수원지법은 최근 정부의 피해자에 대한 배상금 공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3일 '제삼자 변제' 해법을 수용하지 않은 강제징용 배상 소송의 원고 4명에게 지급할 예정이던 배상금을 법원에 공탁하는 절차를 개시했다.
공탁은 생존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의 거주지 관할법원인 광주지법을 비롯해 사망 피해자 2명의 유족이 거주하고 있는 전주지법, 수원지법 등에 신청됐다.
광주지법은 4일 양 할머니가 '제삼자 변제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바탕으로 공탁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정부가 낸 이의신청도 5일 수용하지 않았다.
전주지법은 정부가 고 박해옥 할머니 이름으로 공탁을 신청한 것에 대해 고인은 공탁 대상자가 될 수 없다며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박 할머니와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유족 거주지 관할법인인 수원지법도 '제삼자 변제에 대한 유족의 명확한 반대 의사표시가 확인된다'며 모두 불수리했다.
정부는 이밖에 △수원지법 안산지원(1건) △평택지원(2건) △전주지법(2건) 등 모두 5건의 공탁을 신청해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의 잇따른 불수리에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5일 "법리상 승복하기 어렵다"며 "즉시 이의절차에 착수해 법원의 올바른 판단을 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면밀한 법적 검토를 했다는 정부는 '법리상 승복할 수 없다'라고 했지만 법원의 불수리 사유는 민법상 합리적이다.
민법 469조 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삼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한다. 2항은 "이해 관계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해 변제하지 못한다"라고 명시한다.
이번 공탁의 경우 두 조항 모두에 해당된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실제로 광주지법은 양 할머니가 '제삼자 변제를 수용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힌 것을 바탕으로 공탁 불수리 결정을 내렸고 정부의 이의신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할머니와 고 정창희 할아버지의 유족 거주지 관할법인인 수원지법도 '제삼자 변제에 대한 유족의 명확한 반대 의사표시가 확인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번 제삼자 변제는 채무자인 일본 전범기업이 아니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피해자인 채권자에게 변제하는 구조를 띠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임의로 설립한 재단은 2항에서 말하는 '이해 관계없는 제삼자'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전주지법의 불수리건은 법리보다 형식적인 이유가 크다. 전주지법은 정부가 고 박 할머니 이름으로 공탁을 신청하자 고인은 공탁 대상자가 될 수 없다며 불수리 결정을 내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민법상 망인은 권리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채권자는 망인의 상속인이 된다. 따라서 공탁은 채권자인 망인의 상속인 전원에 대해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