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순발력과 정확한 정보 제공, 여기에 공감 능력은 필수다.
출퇴근길 지하철을 이용하는 서울 시민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서울교통공사 '방송왕'의 자격이다.
20일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하철 최우수 방송왕 선발대회는 1998년 1~4호선을 운영하던 서울메트로 시절부터 시작돼 통합공사 출범 이후에도 매년 열린다.
먼저 3000명이 넘는 승무본부 직원 중 15개 승무사업소에서 본선에 참가할 직원을 1명씩 선발한다. 본선 참가자 15명을 대상으로 이론·실기 평가와 고객 칭찬 민원 등을 종합해 최우수 기관사 1명, 우수 2명, 장려 5명을 최종 선발한다.
이론 항목에서는 고객 서비스를 제공할 때 필요한 전동차 기술과 사규, 방송 관련 규정 숙지도를 평가한다. 실기에서는 전동차 고장, 냉난방 가동 요청 등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본다. 감성 방송 문안을 작성한 후 방송 능력도 평가한다. 전화, 문화,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된 시민 칭찬 의견도 주요 평가 항목이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열차를 운행하다 보면 화재나 추돌, 환자 발생 등 수만 가지 돌발 상황이 생기는데 고객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알려줘야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며 "돌발 상황에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능력과 지친 시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주는 공감 능력을 중요하게 본다"고 설명했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감성방송도 짧은 시간에 핵심을 담는 능력이 필수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고객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2021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최우수상 수상자들을 살펴보면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과 공감능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올해 최우수 방송왕으로 선발된 김정주 기관사는 돌발상황 평가 때 이례적인 상황에 대한 안내방송 문안을 스스로 준비해 열차 상황을 승객에게 세심하게 안내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해 최우수 수상자인 이근백 기관사는 승객 관점에서 쉽게 이해되도록 방송대사를 구성했다. 소속 사업소인 소장과 부사업소장에게 지도받으며 속도나 발음에 신경쓴 것도 수상 비결이다.
2021년 수상자인 신찬우 기관사도 돌발상황 평가 때 사용할 대피방송 문안을 스스로 준비했다. 젊은 승객들의 지하철 탑승 문화를 반영해 이어폰을 낀 승객들에게 주변 상황을 알려달라고 안내하고, 외국인 승객을 고려해 영어로도 대피방송을 했다.
시민들의 칭찬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김정주 기관사는 칭찬 민원 100건 이상 받은 직원만 가입할 수 있는 공사 내 센추리클럽 1기 회원이다. 칭찬 민원 집계를 시작한 2016년부터 지금까지 김 기관사에게 접수된 칭찬 민원은 483건이다.
김 기관사는 수상소감에서 "사회초년생이라고 밝힌 분이 타지 생활에 지치고 힘들었을 때 저의 방송을 듣고 또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고 감사인사를 남겼던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서울에 취업한 지 한 달 차인 광주 토박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청년은 "회사 생활에 치이고 퇴근하는 길 지하철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다"고 적었다.
이어 "그 때 차창 밖 초록빛 풀과 분홍빛 벚꽃을 보고 힘을 내라고 말씀하신 기장님 목소리에 이어폰을 빼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며 "얼굴도 모르는 지하철 직원 분이지만 그 한마디에 타지생활하는 한 청년이 하루를 또 버텨갔어요,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지난해 최우수 수상자인 이근백 기관사에게 접수된 칭찬 민원에도 "오늘 하루 힘든 일 날려버리라는 말에 힘들었던 일을 열차에 두고 갈 수 있어서 내일도 힘이 날 것 같다"는 내용이 있었다.
2021년 최우수 방송왕으로 뽑힌 신찬우 기관사도 '매일 행복하지는 않겠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존재한다'는 곰돌이 푸 이야기를 방송으로 소개했다. 방송을 들은 한 승객이 SNS에 남긴 글이 화제가 돼 방송국 촬영 요청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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