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다시 태어나도 경찰로…34년차 '범죄사냥꾼'


베테랑 형사 이대우 동대문경찰서 수사과장
"경찰 직업은 천직…정년까지 현장 있고 싶어"

[더팩트ㅣ김세정 기자·조소현 기자]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만 한다. 시골 출신, 7남매 중 넷째, 공고 졸업. 특출난 배경도, 재주도 없었다. 하는 일마다 3개월을 버티지 못했다. 그래도 주저앉지 않았다. 악바리 근성의 사내는 스스로 여러 겹의 껍질을 깨고 태어나 강력계 형사의 전설로 날아갔다.

여름의 색이 조금씩 물들어 갈 무렵,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이대우 수사과장을 만났다. 날카로운 눈매, 날렵하고 탄탄한 체격. 34년차 베테랑 형사는 '범죄사냥꾼'이라는 수식어만큼 예사롭지 않은 첫인상을 지녔다.

카리스마에 압도돼 자연스레 고개가 내려가던 순간, 이 과장의 허리에 시선이 꽂혔다. 사복 차림인데도 허리띠엔 경찰 마크가 빛나고 있다. 실례를 무릅쓰고 양복에 왜 이 벨트를 착용했냐고 대뜸 물었다. "포인트로 산 보급품인데 차고 다닌다"며 구수한 말투로 화답한다.

사복에도 항시 경찰 제복 벨트를 착용하는 사람. <다시 태어나도 경찰>이라는 그가 쓴 책 제목이 이해간다.

천직을 찾는 건 행운일까 아니면 노력일까. 이대우 과장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할 것이다. 전남 강진 바닷가에 살던 숫기 없는 소년은 집안의 바다일, 농사일을 당연하게 도왔다. 불평하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의 고생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빨리 돈을 벌겠다는 생각만 차곡차곡 눌러 담던 소년은 학자금을 면제해 준다는 말에 인문계 진학을 마다하고 광주에 있는 기계공고에 갔다. 그러나 기계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고교 졸업장 하나 달랑 든 채 사회로 던져졌다.

범죄사냥꾼 이대우 동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이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세정 기자

'이럴 바엔 군대나 빨리 다녀오자'는 생각에 의경으로 입대했다. 군 복무는 청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운전면허가 있던 터라 수사과장 운전병으로 배치됐다. 강도사건부터 살인사건까지, 수사과장(당시에는 수사과장이 형사과 업무까지 담당) 어깨너머로 접하던 범죄 현장에 매료됐다. 형사들을 현장 지휘하는 수사과장이 참 멋졌다. 제대 후 과일 노점상, 염색공장 영업사원, 정비업소 사장 운전기사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23세 청년은 우연히 형사기동대 공채시험 공고를 보게 됐다. 운명과도 같았다. 이끌리듯 시험에 응시한 청년은 형사가 됐다.

1989년. 돈도 빽도 없는 시골 출신 신참이 내세울 건 건장한 몸밖에 없었다. 정보원도 범죄 첩보도 없던 새내기 형사 이대우는 몸으로 부딪쳤다. 낮에는 행인들의 지갑을 훔치는 '소매치기범', 밤에는 취객의 지갑을 노리는 '부축빼기범'을 잡으러 다녔다. 을지로와 종로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하룻밤에 부축빼기범 11명을 잡은 일은 아직도 회자된다.

"형사는 무조건 범인을 잘 잡아야 해요. 사건을 많이 해결해서 범죄자들을 사회에서 격리하면 최고의 형사입니다. 그런 게 하고 싶었어요. 소매치기나 부축빼기는 현행범이거든요. 타깃을 두지 않고 대상들을 물색해서 쫓아다니면서 지갑을 훔치잖아요. 낮에는 소매치기를 잡고, 밤에는 부축빼기를 잡으려 계속 돌아다니는 거예요. 이런 건 정보원이 없어도 내가 발품을 팔면 되는 것이고, 어떻게 범죄가 발생하는지 안목이 생긴다면 그 자체로 노하우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렇게 현장에서 노하우를 쌓아가던 이대우 과장은 특진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원하던 강력반장 자리까지 올랐다. 2004년부터 7년간 서대문경찰서 강력팀에서 보낸 시간은 형사 생활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과장은 "형사기동대 시절엔 부축빼기나 소매치기 같은 현행범을 검거하러 다녔고, 그다음에 하나씩 쌓여가면서 정보원도 생기고 첩보도 받고 하면서 수사를 하게 됐다. 형사 생활의 밑거름은 형사기동대 있을 때 다 배웠다. 특진도 많이 했고, 꿈이 강력반장을 하는 것이었는데 강력반장이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강력팀에서 함께 근무한 후배 11도 특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형사는 무조건 범인을 잘 잡아야 해요. 사건을 많이 해결하면 됩니다. 현장에서 노하우를 쌓아가던 이대우 과장은 특진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원하던 강력반장 자리까지 올랐다. 2000년에는 경찰에 대한 편견을 바꿔드리겠습니다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범죄사냥꾼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개설했다. /김세정 기자

범죄사냥꾼 전설의 시작. 인터넷 문화가 생소하던 2000년, 경사로 특진한 이대우 과장은 "경찰에 대한 편견을 바꿔드리겠습니다"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범죄사냥꾼'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개설했다. 나에겐 천직이지만, 경찰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너무 박했다. 사명감과 자부심이 넘치던 이 과장은 '그런 편견을 깨뜨려보자'는 생각에 카페를 개설하고 휴대전화와 이메일 주소까지 공개했다. 억울한 이들의 사연도 들어주고, 상담도 해주고, 직접 나서서 사건을 해결해주기까지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00년도면 인터넷 모뎀 쓰던 시절이거든요. 제가 컴퓨터를 잘한 것도 아녔으니까. 저는 너무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경찰에 대한 편견을 깨겠다는 신념으로 한 거였어요. (카페 개설) 2년 되는 시점부터 제보가 오기 시작했어요. 대부분 '경찰서에 갔는데 사건을 안 받아줘요. 억울해요' 이런 건데 저는 이야기를 들어줬어요. 듣다 보면 단서가 있어요. 그러면 이제 오라고 해서 수사해서 범인을 잡고 하니까 피해자가 얼마나 고마워하겠어요. 여러 경찰서에서 '핑퐁'하는 사건을 분석해서 해결해 주는 그런 것들을 했죠."

범죄사냥꾼을 통해 속칭 '삐끼주점'을 소탕한 일화는 유명하다. 2000년대 초, 호객행위로 손님을 불러와 가짜 양주를 판 뒤 바가지를 씌우는 불법 업체들이 성행했다. 피해를 당한 한 대학생은 관할 경찰서에서 사건을 받아주지 않자 범죄사냥꾼의 문을 두드렸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이 과장은 곧장 주점에 들이닥쳐 강남 일대의 삐끼주점을 다 잡아냈다.

포인트로 산 보급품인데 차고 다녀요. 사복 차림인데도 이대우 수사과장의 허리띠엔 경찰 마크가 빛나고 있다. /김세정 기자

즐기는 자, 이대우 과장의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1990년대 초, 용산전자상가에서 빌려온 캠코더를 활용해 수사에 활용하던 형사 이대우는 2019년엔 드론 자격증까지 땄다. 수사에 도움 되는 일이라면 배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포기했던 대학도 진학해 틈틈이 공부해 졸업했다. 이 과장은 "수사를 하다 보니까 잠복할 때 필요하겠다 싶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 잠복할 땐 가까이 가지 않고 원거리에서 드론을 띄우면 확인할 수 있어서 그런 차원에서 드론자격증을 땄다.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다. 투자한 만큼 또 활용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 활동하는 조폭 유튜버들을 때려잡겠다는 생각에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했다. 현직 경찰관 최초로 유튜버 겸직 신청을 한 사람이 바로 이대우 과장이다.

형사 생활 34년 차, 남은 정년은 3년. 마라톤 풀코스로 치면 결승선까지 2.195km 정도가 있다. 두 다리로 완주가 목표다.

"즐기면서 하는 사람은 이길 수가 없어요. 사실 하고 싶은 거 다 했잖아요. 꿈꿨던 강력반장도 하고, 지금 수사과장까지 하고 있으니까 뭐가 있겠습니까. 경찰 생활 마지막 꿈이 있다면 정년이 되는 그날까지 현장에 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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