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판사 "압수수색 사생활 침해 심각"…대면심리 도입 강조


전자정보 혐의 관련 선별 어려워
피의자 부당한 압박수단 사용 우려

대법원 자료사진 / <사진=남용희 기자/20191104>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A씨는 3년차 사내 변호사다. 그의 회사 대주주는 공무원에게 뇌물을 줬다는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A씨가 입사하기 전 일이다. 수사기관은 회사를 압수수색하면서 A씨의 카카오톡, 이메일은 물론 말단 직원을 포함한 수많은 직원의 PC를 압수했다.

워낙 압수 자료량이 많아 현장에서 선별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다음날 수사기관에 출석해 복사해간 자료를 선별 작업했다. 하지만 A씨의 카카오톡을 일일이 열어보는 데만 몇시간이 걸렸다. 수사기관에 웬만하면 협조해야 회사 입장에 유리하다는 조언 등을 이유로 선별 절차를 포기했다.

혐의를 받은 대주주 뿐 아니라 범행 이후 입사한 A씨를 비롯한 다른 직원들의 내밀한 정보까지 압수될 수 있는 상황이다. A씨와 친구가 나눈 비공개 대화까지 압수됐다.

1일 대법원 법원행정처 주최로 열린 영장전담 법관 온라인 간담회에서 정재우 사법지원실 형사지원심의관이 소개한 사례다.

정 심의관에 따르면 '본건과 관련이 있는', '본건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등 압수수색 영장의 문구만으로는 사실상 압수 범위를 제한할 수 없고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된다.

수사기관이 입수한 정보가 어떻게 보관되는지, 수사와 무관한 정보가 제대로 폐기되는지도 알 수 없다. '압수 한 번 당한 사람은 평생 불안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정 심의관은 "전자정보 압수·수색에 따른 시민의 사생활 침해 위험이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며 "‘나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만으로는 이러한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압수수색 영장 실무를 놓고 형사소송법 규칙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영장전담 법관이 임의적으로 대면심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영장 집행 시 피의자 등의 의견진술권 보장 등 참여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전자정보 압수·수색영장 청구서 기재사항에 ‘집행계획'도 추가했다.

정 심의관에 따르면 압수수색 영장 청구는 2011~2022년 10만8992건에서 39만6671건으로 363% 급증했다. 같은 기간 구속영장 청구는 3만7948건에서 2만2589건으로 40.5%, 체포영장 청구는 5만9173건에서 2만7426건으로 53.7% 감소했다. 강제수사 중심이 인신구속에서 압수수색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2022년 기준 91.1%를 기록했다.

특히 스마트폰, USB 등에 저장된 방대한 전자정보는 범죄정보와 무관한 개인생활, 기업활동 정보도 포함한다. 이같이 광범위한 정보 중 범죄 혐의와 관련있는 정보만 선별하기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드는 실정이다.

정 심의관은 "선별없는 압수수색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고 언제든지 별건 수사로 이어져 피의자에 대한 부당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17일 서울 송파구 잠실의 곽상도 전 의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한 가운데, 수색을 마친 검찰 관계자가 곽 전 의원의 집에서 나온 박스를 차량에 싣고 있다. /이새롬 기자

압수수색 영장 대면심리 도입을 비판하는 논리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수사 밀행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에는 영장실질심사 같은 피의자 심문제도로 오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대면 심리 대상은 수사기관이고 심문 절차도 비공개여서 수사 밀행성 유지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제보자 심문은 강제할 수 없고 오더라도 수사기관이 동행할 수 있다.

수사 지연 우려도 대면심리는 소수 사안에만 활용되고 심문 직후 결론이 나오기 때문에 '기우'라는 입장을 보였다. 오히려 숙고 시간을 줄여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법률이 아닌 규칙 개정으로 시행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라는 주장도 있다. 헌법 12조 1항은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정 심의관은 이 조항은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인데 압수수색 영장 대면심리제도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현행 절차에 더 신중을 기하자는 뜻이라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소추와 심판 분리 원칙에 어긋나며 법원이 수사를 하겠다는 의미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 심의관은 대면심리제도는 수사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압수수색 영장 재판 심리를 더 충실히 하겠다는 것이지 수사와는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검찰 관계자는 정 심의관의 주장을 놓고 "압수영장 발부 단계에서 판사가 수사기관이든 참고인이든 불러서 대면해 심리해도 실제 압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정을 미리 예측할 수 없고 사전에 전자증거의 압수 범위나 방법을 제한하는 것 또한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대면심리제를 도입하는 경우 마치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전자정보 압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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