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첫 환자들이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요"
12일 오전 10시 20분쯤, 서울 서초구 내곡동 서울농업기술센터에 위치한 반려식물병원 입원실. 누가 들어도 영락없는 의사 말투의 주인공은 주재천 서울농업기술센터 환경농업팀장이다. 주 팀장은 입원실 안에 놓인 화분 4개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반려식물병원은 병들고 시든 반려식물의 생육상태를 식물 전문가가 정밀 진단 후 맞춤형 처방을 해주는 식물 전문 종합병원이다. 심각한 경우에는 입원실로 옮겨 최대 3개월까지 집중 치료도 해준다. 사후관리 방법 교육은 덤이다.
주 팀장은 대학에서 자원식물학을 전공한 전문가이자 10일 개원한 반려식물병원의 의사다. 그는 잎이 말라비틀어진 행운목을 가리키며 "10년을 키웠는데 꼭 살려야 한다며 어제 식집사(식물+집사의 합성어로 식물에 사랑을 쏟는 사람)가 들고 온 화분"이라고 설명했다.
반려식물병원 입원실은 간단한 처치로는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의 식물을 관리하기 위한 온실이다. 식물이 좋아하는 25-35도의 온도로 설정돼 있어 5도 안팎의 쌀쌀한 바깥 날씨에 비해 후텁지근했다.
10시 30분이 되자 주 팀장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10시 예약한 식집사의 관리가 끝나고 10시 30분에 오기로 한 또 다른 식집사를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려식물병원의 진료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진다. 먼저 병원 1층에서 접수를 하면 보호자와 문답을 통해 상태를 진단하는 '진찰'을 진행한다.
이날 두 번째로 반려식물병원을 찾은 시민은 몬스테라와 아라우카리아를 들고 온 정모(49) 씨다. 몬스테라는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는 외떡잎식물의 일종이다.
정 씨는 "원래 수경재배를 안하던 식물인데 유리통에 넣는 게 예뻐서 수경재배로 바꿨다"며 "(수경재배 후) 곰팡이가 생겨서 뿌리가 썩은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주 팀장은 몬스테라를 들어보이며 "수경재배를 하면 물도 탁해질 수밖에 없어서 잘 갈아줘야 한다"며 "뿌리보다 물높이가 높으면 썩기 쉽기 때문에 뿌리보다 아래로 물이 내려가게 물높이를 조절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건강하게 키우려면 락스 한두 방울을 넣어주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몬스테라 다음으로 주 팀장의 처치를 기다리는 식물은 아라우카리아다. 아라우카리아는 호주의 노포크섬(Norfolk Island)이 원산지인 원뿔형의 상록수다. 잎이 누렇게 시들어 있어 한눈에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정 씨는 "처음 살 땐 트리처럼 모양이 예뻤는데 어느 순간 잎이 누렇게 죽어가고 있는 게 이상해서 (병원에) 왔다"고 속상해했다.
아라우카리아는 입원실로 옮겨져 정밀 처방을 받았다. 진료 과정의 마지막 단계다. 주 팀장이 화분을 파헤쳐 아라우카리아의 뿌리를 꼼꼼히 살펴봤다. 나무 크기에 비해 화분 크기가 너무 커서 흙에 스며든 물이 빠지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왔다.
주 팀장은 "흙이 너무 많으면 물이 빨리 못 빠지니 흙 양을 지금보다 3분의 2로 줄이고 스티로폼을 넣으면 물이 빨리 빠지게 돕는 배수 역할을 한다"고 조언했다.
곰팡이 예방에 도움이 되는 영양제 처방을 끝으로 진료가 마무리됐다. 정 씨는 "그동안 키우던 식물을 많이 죽였는데 네이버에서 검색해도 내 식물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해 답답했다"며 "정확한 진단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려식물병원을 이용하려면 인터넷이나 전화로 사전 예약 후 정해진 날에 아픈 반려식물과 함께 병원을 찾으면 된다.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까지 30분 단위로 신청할 수 있고 선착순 마감된다. 이용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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