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일터가 위험하다. 한국의 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재사고 사망자 수)은 8년째 0.4~0.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34위로, 평균치(0.29)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산업재해율 역시 2018년 0.54%, 2019년 0.58%, 2020년 0.57%, 2021년 0.63%로 감소하기는커녕 상승 추세다.
정부는 현행 주 52시간 근로제를 최대 주 69시간으로 늘릴 예정이다.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사후 규제·처벌 중심에서 자율 예방체계로 전환한다.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변화가 없다는 지적에 따라 자율성을 강조한 '노동개혁'으로 방향을 틀었다.
바뀌지 않는다는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노동자들은 왜 다치고,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며, 정부는 무슨 노력을 해왔을까? <더팩트>는 근본적인 이유를 현장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산업재해가 빈발한다는 현장으로 직접 갔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관련 400여건의 판결문도 분석했다.
왜 ‘목장갑 인생’들은 오늘도 다치고 죽을 수밖에 없는지 7회에 걸쳐 그 잠정적인 결론을 공개한다. 마지막회를 맞아 '비극의 쳇바퀴'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김이현 기자]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를 어쩌라는 거냐."
이쯤 되면 으레 나오는 반응일 수 있다. 안전관리자가 관리감독하지 않더라도, 안전교육이 없더라도 노동자 스스로 조심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건설업기초안전교육을 들을 때도, 여러 기업의 면접을 볼 때도 '알아서 조심하라'는 취지의 얘기는 수도 없이 들었다.
노동자 본인의 안전의식도 중요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시스템'을 지적한다. 지금까지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기존질서를 유지하는 관행, 즉 매일 산재사고가 나도 현실에서 묵인되는 관행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 예방, 사고 난 다음 각각의 책임성은 모두 형식적이고, 노동자의 안전은 추상적인 문구로만 남아있다"며 "기업이 안전 기준을 생략해야만 돈을 버는 구조에서 김용균 씨 같은 산재 피해자들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지적한 '교육, 예방, 사고 난 다음'의 세 가지는 <더팩트>가 살펴봤듯이 실제 현장과 괴리가 크다. 사업장 의무 안전교육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노동부는 사실상 사후대처에만 골몰했다. 노동자 사망 이후 법원의 판결도 무책임했다.
해결책은 세 단계 각각 책임을 철저히 묻는 것이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다 들어 있는 '경영안전 시스템'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러려면 사고를 유발하는 기존 질서를 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진국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법체계는 아주 보수적인 양벌기준을 갖고 있다"며 "노동자 사망으로 현장소장이 벌금형을 받으면 양벌기준에 따라 기업도 처벌 받지만, 자연인의 처벌 범위를 넘지 못한다. 회사도 자연인과 똑같이 500만원 내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산업재해는 사실상 기업범죄다. 기업의 판단은 합리적이라 지금처럼 벌금형이면 위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두세 번 위반할 경우 벌금 500만원 내던 걸 5억원 내라고 하면 절대 위반하지 않는다. 기업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면 자연인의 행동은 자연스럽게 조정된다"고 했다.
말로만 강조하던 교육과 예방도 개선해야 한다. 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은 "각종 노동재해의 진짜 원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감독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며 '산업안전청' 신설을 촉구했다.
권 사무처장은 "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노동재해 조사는 감독관 개인의 판단이 대단히 큰 영향을 끼친다"며 "조사 시작 전부터 '노동자 과실'을 의심하면, 절차도 소홀하고 결과도 그렇게 마무리한다"고 주장했다.
산업재해 조사표를 토대로 현장조사 등을 실시하면 노동자보다는 사업주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다. 꼭 노동자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게 게 아니다. 재해의 원인을 전문적이고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관이 면밀한 재발방지책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은 산업안전보건 업무를 전담하는 별도 조직이 있다. 영국은 HSE(보건안전청, Health and Safety Executive), 미국은 OSHA(산업안전보건청, Occupational Safety and Health Administration) 등 기구를 구성해 운영 중이다.
OSHA는 2016년 6월 앨라배마주에 있는 아진USA와 인력 파견업체 2곳에 총 256만5000달러(30억2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아진USA는 현대‧기아차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다. 공장 조립라인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장비 틈새에 끼어 숨지자 미 노동당국은 원청에 책임을 물었다.
BBC에 따르면 OSHA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세계 유명 제과업체 '마스 리글리'에도 1만4500달러(약 1800만원)의 벌금을 물렸다. 지난해 6월 펜실베이니아주 엘리자베스타운에 있는 공장에서 계약직 노동자 2명이 초콜릿 탱크에 빠져 사망할 뻔했기 때문이다.
OSHA는 이를 '심각한 사건'으로 분류했다. 초콜릿 탱크에 빠진 노동자들은 사건 당시 탱크 청소를 위해 고용됐으며, 적절한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자가 사망해도 주로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그치는 한국과는 차별화된 조치다.
오마바 정부 7년 동안 OSHA청장을 지낸 데이비드 마이클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2019년 방한 당시 "정부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주들에게 작업장 내 위험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라며 "만약 이를 준수하지 못하면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이클스 교수는 또 "노동자를 탓하는 사고방식은 우리가 반드시 싸워야 하는 대상"이라며 "노동환경은 정부도, 일하는 노동자도 바로잡을 수도 없고 오로지 사업주만이 바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성희 교수는 "미국에서 OSHA의 위상은 매우 높은 편이지만 우리는 뒷전"이라며 "안전청을 만들더라도 윗사람 자리만 몇 개 생기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만큼의 위상을 가지고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산안청이 상징하는 의미가 살아나도록 변화를 촉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왜 기업운영을 방해하느냐’ 식으로 나오면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산업, 특성별로 구분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해나가야 그나마 노동자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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