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말 세로야 미안해"…그들이 동물원에 가지않는 이유


동물학대·폭력적 환경에 거부감
동물원 폐지·방사만이 답은 아냐
전문가들 "동물원 기능 바뀌어야"

얼룩말 세로가 탈출한 사건을 계기로 동물을 가둬 놓는 방식의 동물원 환경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어린이대공원.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더팩트DB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우와, 귀엽다. 나 쟤랑 사진 찍을래."

인영 씨의 친구들은 정신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우리 안의 동물들은 '미술관에 걸려 있는 작품처럼' 전시됐다. 같은 곳을 맴도는 사자, 피골이 상접해 뼈의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난 백곰. 인영 씨의 눈엔 어딘가 공허하고 체념한 듯 보였다. 한 친구가 백곰에 다가가 "귀엽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이내 '셀카봉'을 꺼내 들었다. 다른 친구는 그 모습을 보고 외쳤다. "너 '찐(진짜) 동물 러버'네!"

인영 씨는 그 광경이 기이했다.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우리에 갇힌 동물을 바라보는데 죄책감이 들었다"며 "'귀엽다', '피곤해 보인다' 등 철저히 인간 입장에서 그들을 해석하는데 동물을 '인간을 위한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인영 씨는 그 후로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

지난달 23일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에서 얼룩말 '세로'가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세로는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서울 시내를 활보하다가 3시간 만에 붙잡혔다. 다행히 현재는 심리적 안정을 '회복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동물을 가둬 놓는 동물원의 환경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팩트>는 오랫동안 동물원에 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이유를 들어봤다.

◆"동물들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어…고통 공감해야"

동물원에 가지 않는 사람 중 다수는 동물을 생명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선모(24) 씨는 "인간 수준의 권리를 부여할 순 없지만 그들의 고통은 존중해야 한다"며 "동물 시점에서 생각한 후부터 (동물원에)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선 씨는 과거 태국 패키지여행을 간 적이 있다. 관광 상품 중 '호랑이와 사진 찍기'가 있었다. '야생의 왕' 호랑이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도착한 곳은 동물원이었다. 유리 벽으로 된 우리 안에는 호랑이 한 마리와 꼬챙이를 든 흑인 한 명이 있었다. 호랑이는 그에게 통제된 채 유리 벽을 보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선 씨는 "인종차별과 동물학대를 동시에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며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고분고분한 게 생태계 전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5년째 동물원에 가지 않은 문모(26) 씨도 마찬가지다. 문 씨는 대학생 때 놀이동산에서 원숭이 한 마리를 봤다. 원숭이는 나무에 머리를 반복해서 부딪히고 있었다. '이상행동'이었다. 그는 "군대에 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동물이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지 않다"며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 (동물원이) 아무리 넓다해도 스트레스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세로는 다른 재미도 없이 부모가 전부였을 텐데, 부모가 죽고 나니 탈출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암컷을 데려온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어린이대공원은 세로가 외롭지 않도록 암컷을 들여와 합사할 예정이다.

서울어린이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가 서울 광진구 자양동 인근 주택가를 활보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전문가들 "방사가 답은 아냐…전시보단 보호"

세로의 탈출 사건 뒤 서울시설공단 홈페이지에는 동물원 환경을 비판하는 글이 다수 올랐다. 한 작성자는 "얼룩말이 탈출한 게 이상한 게 아니다"라며 "동물원은 동물권 개념이 없던 시대의 잔재다. 환경을 개선하거나 해외 생츄어리(야생동물 보호시설)에 보내야 한다"고 썼다.

동물자유연대도 목소리를 높였다. 단체는 "동물에게는 어울리는 장소가 있다"며 "그 장소가 케이지 안이나 사육장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언젠가는 동물원이 사라지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물원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무조건 방사가 해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한재익 전북대 수의대 교수는 "동물이 갇혀 지내는 게 옳은 방향은 아니다"라면서도 "동물원에서 태어났거나 오랜 시간 사람에게 길들여진 동물을 야생으로 돌려보낼 땐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능도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현재 동물원은 전시 기능을 하는데, 보전이나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 허호정 사육사도 "동물을 야생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마취를 해 이동시켜야 한다"며 "마취는 동물에게 매우 위험하다. (동물 방생을 주장할 땐) 그 과정과 이후까지 꼼꼼히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물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과거 동물원 환경만 생각한 것"이라며 "지금은 동물생태부터 동물복지까지 전문가들이 전문 지식을 통해 애착을 갖고 돌보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대공원 측은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게시글에 "동물생육환경에 맞는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동물원 재조성을 계획 중"이라며 다양한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동물을 보전하는 서식지와 보전기관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겠다"고 밝혔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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