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선은양 기자] 0.78명. 지난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다. 합계 출산율이 전년에 이어 또 한번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출산위)는 지난달 28일 각종 현금성 지원을 포함한 이른바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이후 정부발표를 다룬 기사가 쏟아졌는데 기사 속에서 저출산·저출생 용어를 저마다 달리 사용함을 알 수 있다. 두 용어 중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맞을까?
출산(出産)과 출생(出生)은 엄연히 다른 말이다. 출산은 ‘아이를 낳음’, ‘출생’은 ‘세상에 나옴’을 뜻한다. 출산이 출산하는 사람의 의지가 들어간 행위라면 출생은 태어나는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사건이다. 다시 말해 ‘출산’은 가임기 여성이 주어이지만 ‘출생’은 태어난 사람이 주어다.
의미가 다른 두 용어가 혼용되는 원인은 이 ‘주어’에 있다. 몇 년 전 부터 여성계를 중심으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주체가 여성인 ‘저출산’이라는 표현은 인구감소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출생 인구 감소 현상을 의미하는 중립적 용어 ‘저출생’을 사용하면서 인구감소의 원인이 여성이 아닌 사회구조 문제라는 인식을 사회가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두 용어의 의미가 다른 만큼 바꿔 쓰는 건 안 된다고 설명한다. 학계에서는 두 용어를 구분해 쓰기 때문이다. ‘합계출산율’과 ‘조출생률’로 예를 들면, 합계 출산율은 여성 1명이 가임기간(15세~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조출생률은 1000명당 새로 태어난 사람의 비율을 말한다. 작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이었지만 조출생률은 4.9명이다. 용어에 따라 차이가 큰 만큼 혼용해 쓸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또한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표현하는 것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번에 대책을 발표한 대통령 직속기관 명칭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며 이들이 발표한 대책명도 ‘저출산 대책’이다.
사회 분위기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는 추세다. 국회에는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의 명칭과 해당 법에서 사용된 ‘저출산’이라는 용어를 ‘저출생’으로 바꾸는 법안이 발의 돼 있다. 또 이미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조례에서 저출산 대신 저출생을 사용한다.
용어를 바꾸는 법안이 발의되고 언론이나 일부 지자체에서 저출산과 저출생을 혼용하는 이유는 ‘저출생’이 성평등이라는 가치 지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정경윤 보건복지위원회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저출산을 저출생으로 바꿔쓸 때 저출산이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구조적, 종합적인 문제라는 인식변화를 유도하는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 개정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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