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경찰이 양대 노총을 전방위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비롯해 불법 정치자금 의혹, 간첩 논란 등은 수사 정당성이 있다는 평가다. 다만 노동계는 경찰 수사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사측 입장만 고려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반발한다.
3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24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와 경기도건설지부 등 10곳을 압수수색했다. 김모 수도권북부지역본부장과 허모 건설노조 사무처장 자택에도 영장을 집행했다.
경찰은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2019년 12월쯤 조합원들을 통해 당시 민중당(현 진보당)에 약 6500만원 후원금을 보낸 것으로 의심한다. 법인이나 단체 자금으로 후원금을 기부하는 것을 금지하지만, 자금을 개인 후원인 것처럼 이른바 '쪼개기 방식'으로 기부했다는 의혹이다.
정부가 '건폭'으로 규정한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지난해 12월부터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도 김모 본부장을 입건했다. 경찰은 지난 14일 수도권북부지역본부 사무실과 김모 본부장 자택, 본부 산하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문모 사무국장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산하 서남지대 우모 전 지대장 등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공동강요) 혐의로 수사해 검찰에 넘겼다. 상급 조직인 수도권북부지역본부를 압수수색하며 수사 칼끝을 윗선으로 겨눈 셈이다.
김 본부장이 산하 조직에 전임비와 단협비 등 명목으로 금품을 뜯어내도록 지시하거나 공모한 정황이 포착되면 강제수사 가능성도 있다. 구체적인 증거가 드러나면 수사 범위를 건설노조 단위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현재 압수물 분석을 벌이고 있다.
경찰이 수사 범위를 상급 조직으로 확대하면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부터 의심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까지 장 위원장 신분은 '피혐의자'다. 수도권북부지역본부·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와 현장 불법행위 연결고리가 드러냐느냐가 관건으로 보인다.
장 위원장은 2017년 11월 '총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 과정에서 국회 진출이 가로막히자 마포대교 남단에서 연좌 농성을 벌여, 차량 정체를 유발한 혐의로 2020년 징역 1년6개월이 확정된 바 있다. 지난해 건설노조는 김재연 진보당 대선 후보와 정책협약을 맺기도 했다.
경찰은 한국노총도 수사하고 있다. 서울청 강수대는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금품을 갈취한 산하 한국연합건설노동조합연맹(연합노련) 이모 위원장을 구속 송치했다. 강모 전 한국노총 수석부위원장은 건설노조에서 받은 돈을 동료 간부에게 전달하려 한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내부와 건설업계는 건설현장 불법행위 수사가 진행되면서 악습이 근절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노조'라는 명분으로 현장에서 채용과 금품 강요 사례가 분명했다는 설명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해보니 실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수사는 건설비리 뿐 아니라 공안 분야까지 전방위로 번지는 모양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지난 1월 민주노총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지역본부 사무실 등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전·현직 간부 4명이 구속됐다.
노동계는 경찰 수사뿐만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사측에만 손을 내밀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반발한다.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놓고 수사를 진행할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본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는 눈감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민주노총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수사를 놓고도 "본질은 색깔론에 기댄 이념 공세"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행보 등을 살펴볼 때 사측 이야기는 경청하나, 노동계와는 전혀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며 "오랜 기간 문제가 됐던 부분을 수사할 수는 있으나 방향이 노조만을 타깃으로 돼 과거 노동운동 탄압이 떠오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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