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팩트ㅣ조소현 기자] 가정해보자. 대한민국 여성(또는 남성)이 필리핀 남성(또는 여성)과 결혼해 필리핀으로 이주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언어는 서툴고 문화는 낯설다. 밥벌이는 해야 하기에 고군분투하던 중, 어렵게 모은 1000만원을 보이스피싱 당했다. 현지 경찰을 불렀으나 의사소통조차 되지 않는다. 어떤 심정일까.
이런 상황에서 외사경찰은 '마지막 동아줄'이 된다. 외국인은 그 나라의 언어에 이해도가 낮기에 쉽게 범죄의 타깃이 된다. 외국인이 범죄 피해자가 됐을 때 외사경찰은 통역부터 상담까지 지원한다. 피해가 발생하기 전 범죄예방 교육도 하고 체류외국인 신원조사, 외사 정보분석 업무(외사첩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정책 수립 자료로 제공하는 활동)도 한다.
서울 성북경찰서 양경복 경위는 외국인 관련 범죄를 밤낮 가리지 않고 상담해주는 외사경찰이다. 1997년에 경찰에 임용돼 2016년부터 8년째 외사계에 근무하고 있다. 현재는 관내 성북구 가족센터와 천주교 이주사목위원회(이주여성·이주노동자 상담센터), 성북구청 다문화가족지원협의위원회 운영위원, 법무부 준법시민교육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화려한 경력만 놓고 보면 처음부터 경찰을 꿈꿨나 싶겠지만 사실 장래희망은 조종사였다.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지만 좌절됐다. 부모님은 경찰을 권했다. 남을 도와주는 일에 기쁨을 느끼는 양 경위의 성격이 경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바라던 꿈은 아니었으나 일을 할수록 욕심이 생겼다. 사명감 때문이다. 외사 업무를 알게 된 후부터는 외사계에서 근무하고 싶어졌다.
"중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영어에 관심이 생겼고 자신도 있었죠. 범죄자를 체포하고 수사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제 성격상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에 더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양 경위는 외사계에서 근무하기 위해 늦은 나이에 유학도 불사했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다문화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을 해소했다. 그래서인지 양 경위는 외사경찰의 중요한 능력으로 '인권 의식'을 강조했다. 지금도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다문화정책학과 석사과정을 밟으며 외국인들에게 이로운 정책을 연구 중이다.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문화가정과 이주여성, 이주노동자를 상담할 때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공감해줄 수 있어야 하거든요. 근무 시간 외에도 상담 일이 많아 외국인 인권 향상을 위한 의지 없이는 힘들 수 있어요. 저도 피해자가 상담을 요청할 때는 새벽 1~2시에도 전화를 받아요. 타지에서 범죄에 노출되면 얼마나 외롭고 답답하겠어요."
양 경위가 근무하는 성북경찰서는 특히 외사계가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밀집된 지역으로 중요 외교사절의 관저 경비 및 대사 신변 보호 업무를 했다. 또 고려대, 국민대를 비롯해 5개 대학이 위치해 체류유학생 민원상담 및 범죄예방 교육이 잦았다.
타 경찰서보다 많은 업무량에도 양 경위는 오히려 반갑다는 입장이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직접 도울 수 있어서다. 체류외국인이 한국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때 가장 보람차다고 했다.
외사계에 애정을 갖고 일한 끝에 성과도 많았다. 대사관저에서 발생한 사건과 관련해 통역을 지원해 대사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고 전세금을 뜯긴 다문화가정에 법무사 상담을 연계해 전세보증금을 반환받도록 돕기도 했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이주 여성에게 이주사목위원회의 도움을 연계해 자녀의 병원비를 지원해 2022년 서울청 우수사례에 선정됐다.
양 경위가 열정을 갖고 일했던 까닭은 한국사회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그는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을 우려하며 다문화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사회의) 외국인 유입과 다문화가정 증가는 현실화 돼고 있어요. 일선 경찰관들도 다문화 활동 이해도를 높일 필요가 있죠. 경찰 교육원에서 이뤄지는 다문화 교육 및 인권 교육을 확대해 체류외국인이 한국의 치안 서비스에 더욱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sohyun@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