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감염병예방법상 필수 예방접종 대상이 아니라면 부작용이 발생해도 국가 보상을 받기 어렵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정상규 부장판사)는 장티푸스·간염 백신을 맞은 뒤 사망한 고인의 유족 A 씨가 질병관리청장을 상대로 낸 '피해 보상신청접수 반려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 씨의 아들 B 군 2019년 학교에 입학하면서 A형·B형 간염과 장티푸스 백신 접종을 권고받았다. 학교 측은 신입생 입학 과정에서 예방접종과 결핵 검진 결과서 등 보건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안내하면서 그 대상으로 이런 질병을 기재한 것으로 조사됐다.
B 군은 서류 안내에 따라 2019년 1월 보건소에서 장티푸스 백신 접종을 하고 나흘 뒤 같은 보건소에서 B형 간염 백신 접종을 했다. 이틀 뒤에는 의원에서 A형 간염 백신 접종을 했다. 같은 해 7월 B 군은 침대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사인은 불명이었다.
A 씨는 아들이 예방접종으로 숨졌다며 감염병예방법상 사망일시 보상금 등 피해보상 접수를 신청했다. 하지만 질병관리청은 이듬해 1월 B 군이 보상신청 대상자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접수를 반려했다.
이에 A 씨는 "피해보상 접수 신청은 질병관리청이 일단 수리하고 요건 심사를 거쳐 정식으로 보상 거부 처분해야 하는데 접수 자체를 반려한 것은 위법하다"며 법원에 취소 소송을 냈다.
A 씨 측은 또 "예방접종 당시 입학할 예정이었던 이 사건 학교는 국제적인 교류로 장티푸스 보균자들이 많은 지역의 학생을 수용하고 있어 학교의 백신 접종 강제에 따라 장티푸스 백신을 예방접종 했다"라며 "감염병예방법상 고시의 접종 대상에 해당함에도 피고는 원고가 보상신청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질적인 심사 없이 접수 반려 처분을 한 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감염병예방법 24조는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간염 등의 질병에 대해 관할 보건소를 통하여 필수예방접종을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또 같은 법 71조는 24조 등에 따라 예방접종을 받은 사람이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했을 때 국가의 보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원은 A 씨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B 씨가 백신 접종을 한 간염 등은 감염병예방법 24조에서 정하는 필수 예방접종 대상 질병은 맞지만, B 씨를 필수 접종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감염병예방법이 정한 필수예방접종 대상 감염병 16종에 숨진 B 씨가 접종한 A형 간염과 B형 간염 등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B 씨가 필수 접종 대상은 아니다"라며 "감염병예방법 24조에 의한 필수예방접종은 예방접종의 실시기준 및 방법에 따른 접종 대상에 대해 실시되는 것으로, 이 실시기준 및 방법에 따른 접종 대상이 아닌 자가 예방접종을 받은 걸 구청장 등이 실시하는 필수예방접종을 받은 것으로 보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규정상 A형 간염 백신의 접종 대상은 영유아이고, B형 간염 접종 대상은 신생아 및 영아, 또는 B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 가족 등인데 숨진 B 씨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B 씨가 입학한 학교가 기숙사 생활과 단체급식, 국외 위탁교육과 해외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장티푸스 감염 위험이란 사정 때문에 입학생들에게 장티푸스 백신을 맞도록 요구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런 사정만으로 B 씨를 장티푸스 접종 대상인 보균자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사람이나 유행 지역으로 여행하는 사람 등으로 볼 수도 없다"고 판시했다.
A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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