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칼부림 부르는 층간소음…정부·국회 팔짱만


경찰 "강력범죄 가능성 높아도 예방 힘들어"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는 실효성 부족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이웃센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은 총 25만 2916건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며 더욱 심해졌다.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인턴기자] #.서울 서대문구의 한 여성은 층간소음에 화를 참지 못하고 같은 건물의 외국인을 흉기로 찔러 이달 초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층 계단에서 마주한 윗집 외국인에 "시끄럽다"며 다가가 흉기를 휘두른 혐의를 받는다.

#.지난달 전남 광주에서는 층간소음을 이유로 이웃집에 흉기를 들고 찾아간 40대 여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평소에도 층간소음으로 이웃과 갈등을 벌인 그는 술에 취해 범행을 저질렀다.

작년 인천에서 발생한 '층간소음 흉기 난동 사건'으로 층간소음 갈등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으나 유사한 사건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인천 흉기 난동 사건의 가해자가 지난달 징역 22년을 선고받은 가운데, 재발 가능성을 최소화할 근본 해결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층간소음 느는데…현장조사만 수개월

한국환경공단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이웃센터)에 따르면 2012~2021년 접수된 층간소음 민원은 총 25만 2916건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며 더욱 심해졌다. 2019년 2만6257건에서 2021년에는 4만6596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 민원 대부분은 관리사무소로 모인다. 하지만 관리사무소는 마땅한 대책이 없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경비원 유모 씨는 "방도가 없다"며 "한쪽 편만 들 수도 없고 방송으로 주의를 요구하는 게 최선"이라고 토로했다.

이웃센터에 요청해도 중재는 쉽지 않다. 폭발하는 민원에 전화 연결도 어렵고, 현장조사까지는 수개월 걸리는 일이 흔하다. 온라인 커뮤니티 '층간소음과 피해자쉼터' 회원은 "지난해 10월 센터에 상담을 요청했으나 2월인 현재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만성 인력 부족이 원인이다. 이웃센터 직원은 총 30여 명이지만 상담 전화를 받는 직원은 10명에 불과하다. 2021년 기준 한 명당 4659건을 접수한다. 인터넷과 콜센터 시스템 오류도 잦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서버 오류만 4번 발생했다. 이웃센터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계속 지적받긴 했다"며 "인력 충원에 관한 구체적 계획을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대부분의 정책이 생산자, 시공사 중심으로 이뤄진 탓에 20년 넘게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자 중심,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남용희 기자

◆무력한 제도, 법안은 폐기…"피해자 중심 정책 필요"

정부도 층간소음 방지를 위한 사전인증제 및 사후확인제 등을 실시하고 있으나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사전인증제는 건설사가 시공 전에 공인된 기관에서 층간소음 차단성능을 검증받는 제도다. 그러나 실제 시공 품질은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사후확인제는 공사가 끝난 뒤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정한 검사기관의 성능검사 결과 인정받아야만 아파트 입주를 허용하는 제도다. 이는 전체 아파트의 2~5%를 대상으로만 평가가 이뤄진다는 한계가 있다.

두 제도 모두 법적 강제성은 약하다. 제도상으로는 건물을 성능검사 기준과 다르게 지으면 검사권자가 사업주에 보완시공 등을 권고할 수 있으나 이행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국회에서도 층간소음 문제는 뒷전에 밀렸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1월 공동주택 건설 때 바닥충격음 저감 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법안심사 과정에서 폐기됐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대부분의 정책이 생산자, 시공사 중심으로 이뤄진 탓에 20년 넘게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자 중심, 소비자 중심의 정책을 새롭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사후확인 후 보완시공 요구 등의 조치를 권고 사항으로 둘 게 아니라 강제하는 정책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부연했다.

경찰 일선에서도 정부 차원의 관심을 호소한다. 서울경찰청 소속 모 형사과장은 "통상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거나 경비원을 부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대의 집 문을 두드리는 순간 분쟁이 시작된다"며 "모욕부터 명예훼손, 폭행, 주거침입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쪽 진술을 들어도 근본적인 해결은 어렵다. 구속도 잘 안되는 데다 계속해서 상대를 괴롭히는 탓에 대단히 골치 아픈 문제"라며 "언제든 강력범죄로 확산할 수 있는 시한폭탄인 셈인데 정부 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sohyun@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