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채영 기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너무 겁이 많아 초등학생 때 등산을 못 할 정도였어요. 올라가면 무서워서 내려오지를 못했거든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아요. 실종자를 찾으러 산도 타고 재밌게 일하는 걸 보니 천직을 만났죠."
지난달 31일 만난 경기북부경찰청 수사2계 박다정(39) 계장의 하루는 '7 투(to) 6'이 기본이다. 일선 경찰서 수사과 사건을 관리하는 경기북부청 수사2계는 이른 아침 전날 밤 사건·사고를 확인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관할이 광범위한 사건은 수사2계가 직접 수사한다. 피해자가 여러 명이거나 지방청 지침·법률 해석이 필요할 때 사건을 병합해 진행한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현황과 통계 관리, 범행 수단 차단도 업무 중 하나다.
"평일에는 바쁠 때는 잠자는 시간 빼고는 사무실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부모님이 정말 신기해 하세요. '네가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출근하는 걸 보는 날이 오다니'라는 표현하실 정도예요."
사실 박 계장의 삶은 경찰과는 거리가 있었다. 교육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 논문을 쓰던 중 장학금을 받기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 우연한 기회로 서울여성의전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중 심리학 연구가 현실 문제와 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시민 삶에 밀접한 일을 찾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해 변호사시험 1기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때는 정부 부처에서도 일했지만 업무에 한계가 있었다. 1년 반 정도 되니 단조로움을 느꼈다. 이때 변호사 경감채용 1기 공모를 접했다.
"지금 업무 만족도는 너무 높아요. 사명감을 갖고 경찰관으로서 일하기로 했으니 지금 자리에 충실하는 게 제게 주어진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앉아서 공부하는 게 일상이던 인생이 경찰이 되면서 바뀌었다. 금방 '내가 외근에 잘 맞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하게 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고, 현장에서 사건을 정리하는 일과 교대 근무로 하는 수사 업무에 체력을 갈아 넣으면서도 행복했다.
발로 뛰면서 CCTV를 분석해 범인을 찾아내고 드라마처럼 인상착의를 들고 역 앞에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기도 했다. 법률 분석이나 서류업무가 맞는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대학 생활과 변호사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교육학이나 아동학은 피해자를 이해하는 데 제격이다. 시민단체 봉사 당시 피해자와 나눈 대화들은 감정적 자산으로 남았다. 전형적인 피해자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서다.
최근 가장 큰 보람은 통합수사팀 안착이다. 통합수사팀은 경제팀과 지능팀, 사이버팀을 통합해 수사관 업무를 줄이고 효율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지난해 2월 국가수사본부가 인천청과 경기북부청에서 시범운영을 시작했으며 올해 확대된다.
"경기북부청에서 먼저 시작했는데 1년간의 우여곡절 속에 잘 안착시킬 수 있었어요. 기존에 있던 팀 체제를 바꾸면서 장기화하고 적체된 사건들이 많이 해소됐어요. 덕분에 작년 장기 사건 처리 속도와 성과 부문에서 경기북부청이 1등을 할 수 있었어요."
지금 박다정 계장의 관심사는 경찰 수사력 발전에 한 몫하는 것이다. 교육학-심리학 전공과 시민단체, 변호사, 정부부처를 거친 자신의 경험을 무기로 범죄 피해에 고통받는 시민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오늘도 이른 새벽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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