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못 믿는 학폭 피해자들…"차라리 경찰·변호사"


일선 교사들, 학폭 처리 부담
학폭심의위 늑장…SPO 역할 제한적

더 글로리 등 학폭 소재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며 교육 당국의 폭력 예방 및 사건처리에 관한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교육청 학폭 대책심의위원회의(학폭심의위) 전문성 강화와 학교전담 경찰관 활용 확대 등도 거론된다. /뉴시스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증거만 있으면 경찰로 가세요. 경험자로서 그게 최선이더라고요."

자녀의 학교폭력 피해로 고민하는 부모에 조언하는 내용이다. 학부모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학교나 교육청을 믿기보다는 경찰 신고 혹은 변호사 선임 등 사법기관의 도움이 낫다는 의미다.

'더 글로리' 등 학폭 소재 드라마가 화제를 모으며 교육 당국의 폭력 예방 및 사건처리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가고 있다. 교육청 학폭 대책심의위원회의(학폭심의위) 전문성 강화와 학교전담 경찰관 활용 확대 등도 거론된다.

◆학폭 담당은 ‘기피1호’…폭탄 돌리다 계약직 몫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청원24’ 홈페이지에는 지난달 21일 한 청원이 올라왔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글쓴이는 "학교폭력법 개정을 통해 학교의 붕괴를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현행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 명시한 학교폭력 정의에서 ‘학교 내외’를 ‘학교 내’로 바꿔 달라는 요구다.

청원인은 "방학에 놀이터에서 싸워도 학폭 접수, 학원에서 학생끼리 싸우고 나서 학원 원장이 학교에 전화해 학폭으로 접수하는 실태"라며 "무분별한 학폭 신고로 현장에서는 교육에 투입할 여력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은 사이트에서 유일하게 2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현실에서도 찬성 목소리가 높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사실 교내에서 발생한 학폭 사건 처리도 상당히 부담된다"며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부모 민원에 시달리는 데다, 우리가 판검사도 아니고 어떻게 학폭 발생 경위를 파헤치고 제자들을 유무죄 판결하듯 처분하겠나"라고 항변했다.

수업 준비와 각종 행정업무까지 고려하면 더욱 쉽지 않다고 호소한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 현장에선 학폭 담당이 기피 1순위로 알려졌다. 폭탄 돌리기 하듯 피하다 결국 계약직 교사가 떠안는 일도 흔하다고 한다. 이 교사는 "중학교만 해도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고등학생 학폭 처리는 대단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단순히 업무가 많거나 어렵다는 점 외에도 구조적 문제가 있다. 통상 학폭은 발생 직후 학교장 자체 심의로 해결을 시도한다. 원만하지 않으면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폭심의위’로 사안을 올린다. 학폭심의위에는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가들이 일부 참여하고 있다. 일선 교사들로서는 사안을 먼저 판단하는 자체도 부담이란 목소리가 크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기댈 곳은 줄어든다는 점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시도교육청 학폭심의회에 접수된 학폭 사건은 2020년 2만5903건에서 2022년에는 8월까지만 3만457건까지 폭증했다. ‘4주 이내 심의’가 원칙이지만 지켜진 사례는 2022년 7059건(23%)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의 학폭 처리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학폭심의위 전문가 참여 확대는 당면 과제로 꼽힌다. 일반 학부모가 전문가보다 더 많은 구조를 뒤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참여 없이 심의가 열릴 수 있는 현 구조도 객관성을 떨어트리는 요소로 꼽힌다. /임영무 기자

◆‘명백한 폭력’vs‘교육적 가치’…혼란의 학교

피해 학부모들이 교육기관보다 경찰 등 사법기관에 기대를 거는 배경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의 학폭 처리 체계를 대대적으로 손볼 필요성을 제기한다. 학폭심의위 전문가 참여 확대는 당면 과제로 꼽힌다. 일반 학부모가 전문가보다 더 많은 구조를 뒤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 참여 없이 심의가 열릴 수 있는 현 구조도 객관성을 떨어트리는 요소로 꼽힌다.

학폭 피해자의 부모이자 책 ‘아빠가 되어줄게’를 집필한 이해준 학교폭력연구소장은 "학교나 교육청은 강제 조사권이 없어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가 없다"며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수에 이르는 등 조금만 사건이 복잡해지면, 오히려 ‘머리 아프다’는 듯 단순 처리해버린다는 불만이 부모들 사이에서 팽배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이어 "명백한 폭력 범죄 행위가 벌어져도 ‘교육적 선도’ 등을 들며 기계적 중립을 가장해 보수적으로 판단 내리는 경우도 많다"며 "학폭 관련 조사 초기부터 학교전담경찰관을 일부 과정에 투입해 진상 규명을 돕고, 피해자 보호 및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심리전문가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다소 난처한 표정이다. 정작 학교 현장에 학교전담경찰관(SPO)을 배치했으나 역할은 고민거리다. 수도권의 한 SPO는 "학폭 사건이 벌어져도 SPO에 내용을 공유해주는 학교가 많지 않다"며 "선생님들이 학폭 처리를 스스로 하는 데에도 부담을 느끼지만, 교육적 측면에서 경찰 개입 역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경찰로서도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라며 "다만 안타까운 대목은 선생님 대다수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사안 조사 절차’에 서툴다 보니 심의도 원활하게 못 한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조사의 결과뿐 아니라 과정에서도 피해자를 가해자와 같은 ‘사안 관련자’로 부르는 등 피해자 보호마저 미숙해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바라봤다.

청소년 범죄를 주로 연구하는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는 교사와 SPO의 유기적 소통이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서 교수는 "SPO는 학폭 예방 목적일 뿐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면 수사와 다를 바 없어진다"며 "교사가 하는 사안 조사에 SPO가 조언 정도만 해줌으로써 학부모 신뢰와 피해자 보호를 돕는 게 현재로선 이상적"이라고 진단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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