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채영 기자]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유가족들이 서울광장에 설치한 시민 분향소 앞에서 또다시 유가족과 경찰이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유가족 측은 분향소 강제 철거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6일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서울광장은 유가족과 경찰 사이 긴장감이 팽팽했다. 시청 주변에는 300여 명의 경찰이 배치돼 서울시청의 모든 출입구를 막아 섰다.
빨간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 10여 명은 희생자 영정을 지켰다. 시민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분향소 옆에서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한창이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남편과 함께 온 임모(60) 씨는 "우리 애들도 다 저 또래여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세월호 때도 아이가 딱 그 나이대여서 너무 힘들었는데 또 같은 아픔을 당하니까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조문객 김모 씨는 "국가가 가족을 잃은 부모들이 마음껏 슬퍼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왜 막는지 모르겠다. 우리도 똑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기난로 하나로 시작된 실랑이로 구급차를 부르는 일도 벌어졌다. 이날 오전 한 유족은 택시에서 분향소에 가져갈 전기난로를 들고 내렸다. 그러나 경찰에 제지당하자 몸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유족은 뇌진탕 증세를 호소했다. 옆에 있던 유가족들이 10시 53분께 구급차를 불렀고 11시 4분께 병원에 실려 갔다.
현장에 있던 한 유족은 "영정이 추워 보여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 가지고 왔다는데 반입을 막았다"며 "구급차도 3분이면 올 곳을 11분이 넘어서 도착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격분한 유가족들은 11시 11분께 서울시청 정문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경찰들은 펜스를 치고 유가족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 과정에서 실신한 유가족 2명이 연달아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시청 입구에서 "나와 오세훈"이라고 울부짖었다. 유가족들은 "영정이라도 지키겠다는데 못 하게 해서 다 쓰러졌다", "다 모여 올라가"라고 외쳤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 한 명은 "오늘은 경찰이 많으면서 왜 그날은 없었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경찰과 대치 끝에 유가족 3명은 겨우 경찰을 넘어 들어갔으나 청사 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시청 정문과 경찰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오후 1시 정각이 되자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원회는 "유족들과 시민들의 추모를 탄압하는 서울시의 시민분향소 철거 시도를 규탄한다"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들은 △분향소 철거 시도 즉각 중단 △분향소 설치와 운영 협조 △차벽과 펜스 철거·1인 시위 보장 등을 촉구했다.
이종철 유가족협의회 대표는 "11월 2일 합동분향소를 차렸을 때 영정과 위패가 없었다"며 "지금은 있으니 다시 한번 분향소를 차려달라"고 요청했다. 또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4층에 분향소를 만들어 준다는 시에 대해 "유가족도 검토해봤으나 아이들이 좁은 골목에서 숨을 못 쉬고 죽은 곳인데 (유가족에게) 땅속 깊이 들어가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회견에는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민주당 의원 17명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 오준호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등이 참석해 발언하기도 했다.
이날 서울시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측이) 기습적으로 설치한 분향소는 규정상 불법 설치물"이라며 유가족이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행정대집행에 들어가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시는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시민 추모 공간으로 거듭 제안했다.
앞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 등 150여 명은 4일 녹사평역 분향소에서 출발해 세종대로로 행진하던 중 서울광장에서 발길을 멈추고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과 경찰의 몸싸움이 벌어져 유가족 한 명이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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