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채영 기자]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민주노총)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높게 수사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의 수사 형태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와 그 종착점이 주목된다.
지난 18일 국정원과 경찰은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민주노총 본부, 보건의료노조 사무실, 제주 세월호 기억의관 평화쉼터 사무실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했다. 민주노총 조직국장을 지낸 A씨와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B씨, 금속노조 부위원장을 지낸 C씨, 제주 세월호 기억의관 평화쉼터 대표 D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때문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본부를 압수수색한 건 처음이다.
국정원은 이들이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북측 지령을 수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2016년부터 2019년 캄보디아와 베트남으로 출국해 북한 노동당의 대남 공작 부서인 문화교류국 리광진 등과 접선한 혐의를 받는다. 국정원은 나머지 피의자들은 A씨가 포섭해 관리하는 대상이었다고 의심한다.
리광진은 2021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주통일 충북동지회에 지령을 내렸고 1990년대부터 여러 차례 한국에 침투한 공을 인정받아 북한에서는 영웅 칭호를 받은 인물로 알려졌다.
방첩 당국은 국내에 지하조직을 만든 세력이 민주노총에 침투해 활동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국정원 압수수색 영장에는 암호화 프로그램 스테가노그래피(기밀정보를 이미지 파일 등에 숨기는 방법)와 북측 지령 내용 확보를 위해 노조 사무실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이들이 노동계에서 활동하며 만든 북한과의 연계 조직 구성, 체계, 조직 규모나 연락 관계 등을 규명할 계획이다.
다만 밀행 수사가 철칙인 국정원이 이같은 대규모 압수수색을 감행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뒷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가 내년이면 경찰로 이관되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수사권 이관 이후 국정원에는 정보수집권만 남게 된다. 대공수사권을 지키려는 국정원의 보여주기 식 압수수색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압수수색 다음날인 19일 나온 국민의힘의 입장도 주목된다. 이날 광주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두 눈 부릅뜨고 국가안보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최후의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 조직이 바로 국정원"이라며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재고돼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또 압수수색은 조직국장 자리 한 곳만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나 경찰 1000여 명이 동원되고 사다리차와 추락 방지용 에어 메트리스까지 등장했다. 특히 국정원이 기관명칭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국정원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 조작 사건'으로 국회의원회관을,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통일운동단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사무실을 공개적으로 압수수색했지만 수사관들은 대부분 사복차림이었다.
권영국 변호사는 "국정원 같은 첩보 기관이 조직 이름이 쓰인 옷을 입고 수사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없는 일"이라며 "다른 이슈를 덮으려고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으로도 보인다"고 말했다.
국정원 수사에 반발하는 민주노총은 오는 5월 1일 노동절 총궐기와 7월 총파업 투쟁을 예고하고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것을 예고해 파장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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