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언제 하냐고 묻지 마세요"…고향길 불청객 '명절포비아'


교통량 작년 명절 대비 23.9% 증가할 듯
귀성객 "시댁·친정 스트레스 걱정 생겨"
전문가 "가족일수록 서로 배려해야"

오는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이 권고로 변경되는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리 생활에서 점점 흐릿해지는 모양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승강장에서 귀성객들이 열차를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오는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이 권고로 변경되는 등 코로나19 때문에 사라졌던 일상이 돌아오고 있다. 다만 3년 넘게 이어진 비대면 상황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오랜만의 귀성길이 달갑지만은 않다. '명절 포비아'(명절 공포증)가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한국도로교통공사에 따르면 이번 설 연휴 고속도로 교통량은 하루평균 519만 대로 작년 대비 23.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가 주춤하면서 명절 본연의 풍경이 M 있다.

다만 수년 만에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기쁨도 잠시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 '취업은 했느냐', '아이는 언제 낳느냐' 등 떠오르는 불편한 질문에 명절 포비아가 고개를 든다. 특히 연휴 내내 명절 음식 준비에 매달려야 하는 이들은 그동안 코로나19 속 명절이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느낀다.

포항이 고향인 직장인 이모(29) 씨는 "지난해에는 안 내려갔지만 올해는 미리 KTX 표를 예매해놨다"며 "오랜만에 만나면 '여자친구는 언제 보여줄 거냐',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이냐' 같은 불편한 질문을 많이 해서 미리 그런 건 묻지말라고 말해뒀지만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 명절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가는 친인척이 많아져 내려가도 만날 수도 없다"며 "전처럼 명절에 부모님을 뵈러 가는 게 의무가 되면 모두에게 스트레스다. 나도 다음엔 해외여행을 갈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결혼 12년차 김모(47) 씨는 "2년 만에 명절을 보내러 고향에 내려가게 됐다"며 "코로나19로 부모님들을 못 만나는 게 속상했지만, 명절 음식 스트레스는 사라졌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핑계가 없어져서 계속 가게 될 텐데 차라리 코로나가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결혼 2년차 최모(30) 씨는 "양가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명절인데~', '가족인데 당연히~'라는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명절 문화를 무시하기 쉽지 않다"며 "명절에 임신 얘기를 마주보고 해야 하는 게 난감하고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최 씨는 "명절에 안 내려가니 직장 생활하며 하지 못했던 문화생활도 할 수 있고 교통비·식비도 절약됐다. 특히 시댁, 친정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서로 눈치 보는 일도 없어 좋았다"며 "모두의 건강을 위해 완강하게 오지 말라고 할 때가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설 명절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새로운 명절 문화가 자리 잡은 가정도 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인정하는 것이다.

대구 출신 김모(28) 씨는 "코로나19가 유행할 당시 부모님이 명절마다 내려오지 않도록 했다"며 "이번에도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서 휴일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사람이 몰리고 혼잡한 귀성길을 뚫고 오는 것보다 평소에 시간 내서 만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는 가족일지라도 오랜만에 만나는 만큼 서로 더욱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길게 보면 햇수로 4년 만에 맞이하는 명절이다 보니 서로 낯설 수 있다"며 "주기적으로 만나던 가족들을 만나면 큰 변화가 없겠지만, 중단됐다 다시 시작하는 명절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이럴 때마다 하면 안 되는 금기어들을 주의하고 가족이라도 서로 준비를 하는 것이 좋다"며 "우리나라 교유의 가족끼리 긴밀한 좋은 문화를 살려나가려면 서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chae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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