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끝나지 않은 '염전의 비극'…"지구 끝까지 쫓아가 잡는다"


'염전수사' 전문 문영상 전남청 강력계장
경찰도 지적장애인 조사 전문성 필요
"부당한 대우 받았다면 경찰 찾아야"

문영상 전남경찰청 형사과 강력계장(사진)은 1998년 경찰대를 졸업하고 목포경찰서 형사과장과 전남청의 광역수사대, 마약수사대, 사이버수사대 대장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전남청 형사과 강력계장에 부임했다.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친 ‘수사통’이지만 염전 종사자 수사의 의미는 특별하다.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그의 손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주현웅 기자

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8년 전 악연을 다시 마주했다. 2014년 세상에 공분을 일으킨 이른바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이다. 가해자도 당황하긴 마찬가지. 자신을 붙잡아 구속시킨 경찰을 또 만났다.

문영상 전남경찰청 형사과 강력계장은 착잡했다. 경찰로서 재범을 막지 못했다는 반성과 염전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라는 문제의식에 아직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문 계장은 1998년 경찰대를 졸업하고 목포경찰서 형사과장과 전남청의 광역수사대, 마약수사대, 사이버수사대 대장 등을 거쳐 지난해 1월 전남청 형사과 강력계장에 부임했다.

여러 분야를 두루 거친 '수사통'이지만 염전 종사자 수사의 의미는 특별하다. 처음 염전 노동의 실태가 알려진 2014년, '제2의 염전사건'이 재발한 2021년말.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그의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전남 신안 신의도에서 발생한 염전 사건은 지적 장애인들을 감금하고 강제노동을 시킨 충격적 사실로 사회적 공분을 불러온 바 있다.

"2014년 목포서 형사과장, 2022년 전남청 강력계장으로 부임했는데 전부 처음 맡은 수사가 염전근로자 사건이었습니다. 참 아이러니하죠. 근절되지 못한 병폐에 가슴 아프기도 하고요."

전남청은 2021년 인권단체 고발에 따라 합동점검팀을 꾸려 염전 912곳을 전수 점검해 5건의 불법행위를 적발했다. 이듬해 1월 수사부장(경무관)이 팀장을 맡는 '수사전담팀'으로 격상해 2개월여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문 계장은 수사전담팀 중간관리자로 합류했다. 8년 사이 범죄의 가해 방식은 조금 달라졌다. 과거에는 물리적 학대 등이 빈번했으나 최근엔 욕설 등 정신적 폭력과 임금 미지급 및 사기 행위가 대부분이었다.

문 계장이 다시 마주친 피의자의 태도도 약간 바뀌었다. 2014년 검거 때에는 '내가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했는데 이제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들만 그대로였다. 정신지체 혹은 경계성 장애를 앓는 이들은 2014년에도 절반 이상이 수사 후 염전으로 돌아갔었다. 이번 역시 수사 과정에서 경찰보다 염주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었다.

"대부분 직업소개소에서 알선료 명목의 과다 채무를 떠안고 염전에 들어갔어요. 임금은 못 받거나 용돈 혹은 담배 등으로 대신하고요. 조사 중에도 염주 집에서 생활하고 묵다 보니 친밀감 형성이 쉽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경찰보단 염주를 믿고 의지했죠."

문 계장 합류 후 전담수사팀은 염주와 직업소개소 관계자 등 총 40명의 피의자를 사법처리했다. 염전근로자 인권침해 사건의 근본적 문제를 분석해 정책 및 입법 제언과 피해자 장애인 등록 등 보호 업무까지 추진했다./주현웅 기자

그래도 성과는 있었다. 문 계장 합류 후 전담수사팀은 염주와 직업소개소 관계자 등 총 40명의 피의자를 사법처리했다. 염전근로자 인권침해 사건의 근본적 문제를 분석해 정책 및 입법 제언과 피해자 장애인 등록 등 보호 업무까지 추진했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욱 크다. 수사 성과를 떠나 문제 해결의 근본책 마련까지는 갈 길이 더 남았다는 게 문 계장 생각이다. 정부와 지자체 및 여러 관련 기관이 유기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지만 행정력이 전부 닿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염전 피해자 대부분은 꼭 장애에 이르지 않더라도 경계성 장애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다. 노숙인이나 신용불량자 등은 정상적인 취업이 힘든 탓에 염주들의 부당한 대우에도 신고를 대부분 망설인다.

장애인 피해자도 다르지 않다. 여러 사정상 가족보단 사회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쉼터 등으로 옮겨 가해자와 분리 후 조사하는 게 좋지만 쉽지 않다. 적잖은 장애인들이 시설을 기피한다. 대책을 마련하려면 대단히 섬세한 고민이 필요한 현실이다.

문 계장은 경찰에도 쓴소리를 했다. 지적 장애인과 심리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전문 수사관이 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경찰도 지적 장애인과 라포를 형성하고 조사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해요. 물론 지자체 및 장애인권익 옹호 기관 등과 함께 피해자들의 정식 장애인 등록, 정기 면담 및 기동순찰 등 재발 방지에 힘쓰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실효성을 어떻게 담보할지부터 염전에 대한 근로감독과 처벌의 규정 등 보완 과제가 많지요."

그는 고용노동부 등의 공공기관을 통한 염전 인력시장의 공영화, 기숙사 등 근로자 숙소 제공 등을 아이디어로 제시했다.

시민과 언론 등에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노예는 없다. '염전 노예 사건'이란 말은 잘못됐다. 범죄의 유형도 꼭 염전 산업에서만 두드러진다고 볼 수 없다. 어느 산업 어느 지역에서나 벌어지는 사건이다. '신안 염전 사건'이란 표현도 잘못됐다.

문 계장은 지금도 염전 수사의 책임자다. 그는 단호한 경고를 남겼다.

"처벌받은 가해자들뿐 아니라 지역 염주들은 꼭 법을 지키십시오. 인권침해 피해가 있다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 적극 수사해 해결할 것입니다. 피해자 및 종사자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면 불안해 마시고 경찰에 손을 내밀어 주세요.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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