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피해 4조원…신속한 '계좌 일괄 지급정지' 관건


"경찰 직접 판단 부담" vs "적극적인 대응 가능"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화금융사기는 1년 전보다 28.5% 줄었다. 조직 윗선 검거는 21.6% 증가한 626명이다. /박헌우 기자

[더팩트ㅣ조소현 인턴기자] # 2021년 3월 60대 주부 A씨는 '딸 사칭' 메신저피싱에 걸려들었다. 사기범은 원격제어가 가능한 미러링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할 것을 요구했고 의심 없이 앱을 설치한 뒤 주민등록증과 신용카드 사진, 비밀번호를 보냈다. 몇 분 뒤 사기범은 A씨의 주거래 은행 계좌에서 1000만원을 빼갔다. 오픈뱅킹 서비스를 이용해 다른 은행 계좌 잔액까지 한꺼번에 인출했다. A씨 휴대전화는 악성앱으로 통화가 되지 않았고 피해금이 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경각심은 높아졌으나, A씨처럼 자녀를 사칭한 범죄에 부모는 여전히 속수무책이다. 지난달 13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22'에 따르면 2006~2021년 보이스피싱 누적 발생 건수는 총 27만8200건이다. 누적 피해액도 4조원에 달한다.

보이스피싱 윗선 검거, 즉 조직 적발은 쉽지 않다. 보이스피싱 범죄 정부합동수사단에 따르면 콜센터 97% 가량은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2018~2021년 평균 검거인원은 3만8015명으로, 특히 총책과 텔레마케터 등 '윗선' 검거율은 2.0%(760명)에 그쳤다.

경찰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강력 대응을 천명하면서 지난해 전화금융사기는 1년 전보다 28.5% 줄었고 검거된 조직 윗선은 21.6% 늘어난 626명을 기록하는 등 개선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후적인 엄벌보다는 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이는 게 더 효과적이다. 특히 피해가 발생했더라도 범죄를 알아챈 직후 신속히 계좌를 지급정지해야 피해액을 최소화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 업무를 전담하는 A경위는 "이른바 '총책'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국내에 없고 범죄 특성상 가담자 역할이 세분화돼 있어 책임성을 나누기 어렵다"며 "피해금의 행방도 명확하지 않고 피해 회복도 쉽지 않으니 예방 부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속한 지급정지를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 국회에는 관련 법안이 발의돼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황보승희 의원은 지난 4일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조성은 기자

황보 의원은 "피해금이 송금·이체되면 피해자가 은행에 해당 계좌의 지급정지를 직접 요청해야 한다"며 "금융회사 한 곳의 지급정지가 이뤄지는 동안 다른 금융회사의 계좌가 피해를 입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금감원이 '내계좌 지급정지' 서비스를 개시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지급정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지난달 27일 본인 명의의 모든 금융계좌에 대해 일괄 지급정지를 신청할 수 있는 '내계좌 지급정지'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러나 해당 서비스는 온라인이나 모바일앱을 통해서만 이용이 가능해 일각에서는 고령층 피해자들이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수사기관이 아닌 피해자가 직접 서비스를 신청해야 하는 점은 동일해 신속한 피해구제에도 한계가 있었다.

황보 의원실 관계자는 수사기관이 금융회사에 요청해 일괄적인 지급정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개정안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허위로 신고하면 처벌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수사기관의 반응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법이 통과되면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확인한 사실과 자료를 근거로 금융기관에 범죄 사용 계좌를 거래정지 요청할 수 있다. 다만 A경위는 "피해 신고의 신뢰성을 판단해야 하고, 거래정지 요건에 해당되는 계좌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경찰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신속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수법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지급정지가 안 돼 돈이 빠져나가면 복구가 구조적으로 어렵다"며 "사회적 비용을 고려했을 때 법적 근거를 마련해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야한다"라고 언급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보이스피싱 범죄가 새로운 수법으로 진화하고 있어 금융제도 개선은 진작에 됐어야 할 부분"이라며 스미싱 피해 대책도 강조했다. 보이스피싱 범죄의 과반을 차지하는 스미싱은 사용자가 스스로 악성앱을 다운받고 메일이나 URL을 클릭해 피해를 입는 사례를 말한다. 그는 "통신사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기본권 제한과 영업의 자유 제한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기술적인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sohyun@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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