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어렸을 때 아버지가 쓰러지기 직전의 컴퓨터 한 대를 들고 오셨어요. '대항해시대', '바람의나라' 같은 게임부터 시작해 장난감처럼 갖고 놀며 막연히 IT분야에 관심이 생겼고,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죠."
서울 강북경찰서 수사과 사이버수사팀 전민수(37) 경사의 인생은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가져온 386컴퓨터 한 대가 바꿨다. 어린 시절 컴퓨터로 키운 꿈은 대학 전공과 진로로 이어졌다. 가족의 격려와 응원도 힘이 됐다.
"혼내시기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어요. 제가 욕심도 생겨 자격증을 취득하고, 홈페이지 제작 경진대회에서 입상도 하니까 더 응원해주셨습니다. 컴퓨터도 새로 사주시면서 제가 선택한 방향을 믿어주셨습니다."
대학 재학 중 백신 프로그램 제작업체에 취업했으나, 제2의 삶에 대한 고민이 다른 사람보다 빨랐다. 그때 과거 한 기사에서 읽은 북한 해커 문제가 생각났다. 막연했지만 그들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2013년 사이버수사관 특별채용으로 입직했다.
전 경사는 중앙경찰학교 교육 등을 마치고 2014년 강북서에 발령된 이후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그만큼 강북서 사이버수사팀의 '기둥' 같은 인물이다. 사기 범죄부터, 명예훼손에 디지털 성범죄까지 8년 동안 수많은 사건을 수사했다.
사이버수사팀은 사기 범죄를 주로 맡는다. 투자 사기나, 자녀 사칭 메신저 피싱, 해외 파병 군인이나 해외 거주 전문직을 사칭하며 친분을 쌓은 뒤 돈을 뜯어내는 사기 수법인 '로맨스스캠'(Romance Scam) 등을 많이 다룬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접수율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피해 정도가 심각하기 때문에 수사하다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n번방과 박사방 사건 등으로 중범죄라는 인식이 생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건들은 끊이지 않는다.
"잊지 못할 사건이 15세 여학생이 17세 여학생을 상대로 디지털 성범죄를 저질렀던 일입니다. 피의자를 특정한 이후 다른 수사팀 동료와 사건을 넘겨받은 검사도 의심했을 정도의 사건이었습니다."
전 경사는 그 사건으로 더욱 '예방'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가해자인 15세 여학생도 가정에서 정서적 안정을 찾지 못했고, 범죄까지 저질렀다. 담당했던 수사관 입장에서는 결국 어른들의 예방과 교육이 부족하다고 절감했다.
사이버수사 자체가 피의자 특정부터 쉽지 않아 예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최근 이른바 '제2 n번방' 사건 엘(L)을 수사하며 140여 차례 영장을 발부받았을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예방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 전 경사는 2017년부터 학교 등 기관을 상대로 하는 사이버범죄예방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경찰청은 전국 100여명 전문강사를 운영하고 있다. 사이버범죄예방 교육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사이버수사국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2010년도부터 운영하는 전문강사에 빈자리가 생기자마자 전 경사는 '무조건' 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관내에 있는 한 기관에 범죄 예방과 관련돼 강의 형식으로 설명한 경험도 사이버범죄예방 전문강사를 희망하게 된 계기 중 하나다.
"수사 인력 확충도 중요하지만 범죄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방과 교육을 통해 범죄 자체를 줄일 수 있고, 피해도 막을 수 있습니다. 수사를 통한 엄정한 법 집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bell@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