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유튜브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 취재진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택에 침입한 혐의로 고발당하면서 이들의 처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국에서 언론인의 취재 영역에 '성역'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지난 판례는 주거자 승낙 없이 주거지에 침입하거나, 타인의 자료를 무단 방출하는 등 위법한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시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한 장관 승낙 없이 자택 앞에서 도어록을 건든 더탐사 취재진의 행위 역시 주거칩임죄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주거침입 사건에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며 잇따라 무죄를 확정하고 있는 대법원 경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특종 강박에'·'사이비 기도원 찍다가' 피고인 된 취재진
A 기자는 검찰청 직원이 출근하지 않는 휴일 이른 시간에 청사에 들어가 검사실 등에서 기사 소재가 될 만한 자료를 가지고 나왔다. 그는 당시 매체를 막 옮겨 특종에 대한 강박감으로 이 같은 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A 기자의 취재 방식은 이른바 '쓰레기통 뒤지기'라는 관행으로 불렸다.
B 피디는 가족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며 신도들의 돈을 편취하고 있다는 한 기도원에 관한 제보를 받고, 해당 기도원의 신도였던 제보자들과 기도원을 방문했다. 기도원 관계자가 취재에 항의하며 나가달라 요구했으나 B 피디 등은 진입을 시도하며 카메라로 내부를 촬영했다.
이들은 모두 건조물침입·공동주거침입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기자는 건조물침입과 절도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그동안의 취재 및 보도활동을 통해 사회발전에 기여한 점이 인정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확정받았다. B 피디는 종교를 빙자한 범죄 행위를 취재한다는 공익 목적은 인정됐으나, 기도원 관계자에게 미리 승낙을 받는 등 다른 방법을 취할 수 있었다다는 이유로 유죄 판단(벌금형 선고유예)을 받았다.
◆"구속영장은 지나쳤지만" 주거자 의사에 반해 유죄 가능성도
이처럼 법원은 취재라는 공익 목적을 인정해도 법에 저촉되는 행위일 경우 유죄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 장관의 자택 진입을 시도한 더탐사 취재진의 행위도 처벌할 수 있을까. 더탐사 취재진은 한 장관이 거주하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를 찾아가 집 현관문 앞에서 여러 차례 한 장관을 부르고, 현관 도어록을 건드린 것으로 조사됐다. 공동 현관은 열려 있었고, 엘리베이터 출입 카드는 입주민이 눌러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주거침입 혐의로 고발당했다. 경찰은 사전 구속영장도 신청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법조계에서는 목적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주거침입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사실관계가 명확하고 증거도 확보돼 구속영장을 신청한 건 무리수였다고 평했다. 하진규 변호사(법률사무소 파운더스)는 "주거침입의 보호법익은 주거의 평온이다. 현관문 앞에서 소리치고 도어록을 건드린 건 주거자의 평온이 깨진 행위로 판례상 유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입주민이 출입을 도와줬다는 것 역시 해당 입주민이 특정 주거지에 들어가라고 승낙했다는 의미로 볼 수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사실관계가 다 드러났고 영상 증거가 있기 때문에 구속은 과하다"라고 덧붙였다. 서초동의 한 중견 변호사 역시 "취재 목적이라도 주거지가 있는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는 것과 집 앞까지 찾아가는 건 다른 사안"이라며 "주거자 의사에 반해 진입을 시도했다면 주거의 사실상 평온을 해한 경우로 보인다"라고 봤다.
◆주거침입죄에 '깐깐해진' 대법원, '주거의 평온'이 기준
하지만 유죄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대법원이 최근 주거침입죄 요건을 엄격하게 보며 종전 판례를 변경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용현 변호사(법무법인 클래스)는 "최근 1~2년 동안 대법원에서 주거침입죄 성립 요건을 엄격하게 보고 있다. 과거에는 주거자의 추정적 의사를 기준으로 판단했지만, 최근 판례상으로는 주거의 평온이 사실상, 현실적으로 깨졌느냐가 기준이 됐다며" "이 사건의 경우 더탐사 측에서 입주민 도움으로 들어갔다고 주장하고 있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폭력 행위가 있었던 건 아니라 최근 대법원에서 판시하고 있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 판례 변경이 대표적이다. 1992년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은 14대 대선을 앞두고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대화를 나눴는데, 이 내용이 통일국민당 관계자 도청으로 알려지게 됐다. 검찰은 도청 장치를 설치한 이들을 주거침입죄로 기소했고, 대법원은 점주가 도청 장치 설치 목적의 출입은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죄로 판결했다. 25년 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비슷한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화물 운송 업체 직원들이 기자가 회사에 부적절한 요구를 하는 장면을 녹화하기 위해 점주 몰래 식당에 녹음 장비를 설치한 사건이었다. 직원들이 점주 허락 아래 식당에 들어간 이상 '사실상의 평온 상태'가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해 대법원은 남편이 아내가 몰래 집에 데려온 내연남을 주거침입죄로 고소한 사건에서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동거인 전원의 승낙을 받아야 하는지였는데, 1984년 대법은 비슷한 사건에서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하는 주거에서 동거인의 의사에 반해 평온을 해친다면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40여 년 뒤 전합은 "피고인이 공동 거주자로부터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주거에 들어갔기 때문에 주거의 사실상 평온 상태를 해치는 행위로 볼 수 없다. 피고인의 주거 출입이 부재중인 다른 거주자 의사에 반하는 것으로 추정되더라도 주거침입죄의 성립 여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상반된 판례를 내놨다.
이 같은 경향은 취재진이 걸려든 사건에도 반영됐다. 시사프로그램 제작자 C 씨는 구치소에 수용된 피의자를 취재하기로 하고 지인인양 접견을 허가받은 뒤 해당 피의자를 접견했다. 접견 내용을 녹음하는 건 금지돼 있지만, C 씨는 명함지갑 모양의 녹음 장비를 소지해 접견실로 들어가 접견 장면을 촬영하고 그 내용을 녹음했다. 더탐사 취재진과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관리자의 현실적인 승낙이 있었고, 관리자가 행위자의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사정이 있더라도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라며 "관리자의 현실적인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에 따라 건조물에 들어간 경우라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모습으로 건조물에 들어간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없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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