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전국장애인철폐연대가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1년 동안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이어왔지만, 내년도 관련 예산은 0.8% 증액되는 데 그쳤다. 이에 전장연이 강경대응을 예고하자 서울시는 '무관용 원칙'을 내세우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27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의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11조원 이상 늘어나면서 정부 부처 중 가장 많은 109조1830억원으로 확정됐다. 올해 본예산보다 12.0% 늘고 정부 총지출의 17.1%에 해당하는 수치로, 보건복지 예산이 100조원대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복지·장애인 분야의 증액 규모는 79억원이다. 발달장애인 방과후 활동서비스 지원시간을 월 44시간에서 66시간으로 늘리는 데 2569억원이 투입된다. 올해 대비 489억원 늘어났다.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세계농아인대회 개최 비용 9억5000만원, 장애인편의증진센터 운영비도 5억원으로 확정됐다. 다만 장애인 주간보호시설과 직업재활시설 등을 신축·기능 보강하는 데 쓰이는 예산은 올해보다 91억원 감액된 264억원으로 편성됐다.
전장연은 그간 장애인권리예산으로 정부안 대비 1조3044억원의 예산 증액을 요구해왔다. 앞서 각 상임위 심의를 거치면서 장애인 권리예산이 요구안 대비 51%인 6653억원으로 조정됐지만, 전장연은 해당 예산안만 통과돼도 유의미하다며 지하철 시위를 잠정 중단하기도 했다.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되자 전장연은 곧바로 논평을 냈다. 이들은 지난 25일 "장애인 시민권은 0.8%(약 106억)만 보장한 윤석열 정부에 참담함을 느낀다"며 "믿음을 가지고 여야가 합의한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기다렸지만 좌절됐다"고 비판했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예산안 증액 권한은 기획재정부가 가지고 있다. 기재부는 철저하게 무시했다"며 "윤 대통령은 국민통합위원회, 장애인 이동권 강화를 발표해놓고도 그림 감상의 대상용으로 (우리를) 전락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오세훈 서울시장,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모두 적극적으로 장애인 권리예산 반영을 검토한다고 말했다"며 "그런데도 안 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지하철 선전전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예산안 통과 전까지 휴전하자'고 제안했던 서울시는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오세훈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전장연 시위 재개 선언은 용납할 수 없다"며 "서울경찰청장과 논의를 마쳤고, 서울교통공사가 요청하면 경찰이 지체없이 신속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또 "시위 현장에서의 단호한 대처 외에도 민·형사상 모든 법적인 조치를 다 하겠다. 서울 시정 기조인 '약자와의 동행'이 불법까지도 용인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라며 전장연의 책임있는 행동을 거듭 촉구했다.
그러자 박경석 대표도 "21년간 외쳐온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는 무책임했다"며 "불법을 규정하는 건 사법부 역할인데, 시장이 왜 사법부의 권한까지 행사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민·형사상 조치는 이미 하고 있으니 때린 곳을 또 때리겠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내년 1월2일 장애인 권리예산·입법 쟁취(1박2일) 1차 지하철 행동을 예고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장애인 생활권과 복지가 굉장히 취약하다.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개선돼야 하는데, 중앙정부나 서울시는 그런 인식이 별로 없다"며 "그러니 시위 행동에 대해서만 문제 삼지 이면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어진 예산을 가지고 요구사항을 100% 다 들어줄 순 없지만, 나몰라라 하거나 민·형사상 문제를 거론하면 전장연은 더 궁지에 몰리면서 치열한 행동을 진행할 것"이라며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는 원인부터 우선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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