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이태원 참사에서 드러난 문제점 해결을 위해 출범한 '경찰 대혁신 TF'(경찰TF)가 중간 결과를 내놓았으나 실효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인파관리 매뉴얼'을 마련한다지만 이미 8년 전부터 사실상 존재해왔다.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운영이 미흡했기 때문이었는데, 새 매뉴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TF는 지난 15일 제5차 전체회의를 열고 1~4차 회의에서 논의한 총 20개의 혁신과제를 정리해 '범정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TF'(범정부TF)에 제출하기로 했다.
경찰TF는 우선 10개 과제를 현장에 적용하고, 남은 10개 과제는 법·제도 개선 등 검토를 거쳐 추진할 방침이다.
즉시시행 10개 과제는 △인파관리 매뉴얼 제작 △반복신고 감지시스템 구축 △현장대응 장비 도입 △다중운집 상황에서 기관협업 강화 △상황실 책임자(총경급) 전종체제 구축 △다목적 당직 기동대 운영 △112신고 사건 전파 어플리케이션 개발 등 지휘·보고체계 개선 △관리자 자격 심사제 도입△다중운집상황 교육 실시 △위기대응 훈련 반복·정례화 등이다.
특히 인파관리 매뉴얼 제작이 눈에 띈다. 경찰TF가 출범 직전부터 공언해온 내용이다. 지난달 18일 첫 회의 때부터 이달 초까지 제작하기로 결정하는 등 가장 의지를 보여온 사항이다.
그러나 해당 매뉴얼 제작은 12월 중순을 넘긴 현재까지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아직 만들고 있다"면서도 "완료 시점을 특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경찰에 인파관리 매뉴얼이 없지는 않다. 2014년부터 '다중운집 행사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현장에 적용해왔다. 경찰TF 지침으로 이는 사실상 폐기수순을 밟게 됐다.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2014년 매뉴얼을 보면 총 285페이지 분량으로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특히 이태원 참사처럼 인파 밀집으로 벌어진 안전사고 사례도 상세히 소개했다.
1993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와 해태의 경기를 보려는 관중들이 1-1문 셔터로 일시에 입장하다 넘어져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2000년 대구 통일교 행사를 마친 뒤 내리막길을 내려오던 다수 인원이 넘어져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2013년 불꽃축제에서는 과도한 인파가 몰려 수십 명이 응급 치료를 받았다.
해당 매뉴얼은 이와 함께 "경찰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 등에 따라 행사장 안전관리에 대한 경찰력 개입의 법적 근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사 전 경찰력 배치 및 사후 발생 이후 대응 요령 등도 상세히 명시했다. '인파가 한꺼번에 쏠리지 않도록 경력으로 중간중간 완충지대 확보' 등이 대표적이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은 사항이다.
새로 만든 매뉴얼이 투명하게 공개될지가 다음 관심사다. 먼저 제작된 매뉴얼의 경우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처음 공개됐다. 문서 서문부터 "본 매뉴얼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 수록돼 있어 대외 열람 및 전파를 금지한다"면서도 "이 매뉴얼은 다양한 다중운집 행사의 기본 처리 요령을 설명한 것으로 특정 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을 판단하는 기준은 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더팩트>는 '기존 매뉴얼이 있는데 새롭게 제작하는 배경', '이달 초 끝내려던 새 매뉴얼 제작이 늦어진 이유', '새 매뉴얼 대외 공개 여부' 등을 묻기 위해 경찰청 TF 관계자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다만 경찰TF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참사가 발생했는데 기존 매뉴얼을 고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긴 부족하지 않겠나"라며 "또 자치경찰 도입 등 당시와는 달라진 부분도 있어 전면 새로운 규정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뉴얼이 만들어지면 이번엔 대외에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서도 "아직은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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