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정부와 노동계가 총파업을 두고 연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서로 '불법 행위'를 주장하며 강경 대응으로 맞서면서 대화 창구가 닫혀있는 상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5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부가 발동한 업무개시명령 처분 취소소송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또 노동·시민·인권단체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업무개시명령이 기본권 침해라는 의견을 표명해 달라"며 진정을 냈다.
조연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정당한 사유가 없고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상황이 충족되지 않는다"며 "다른 조치들을 검토한 뒤 최후 수단으로 여겼어야 했는데 비례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소송 취지를 설명했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이날까지 문자메시지로 업무개시명령을 받은 조합원은 49명, 등기송달은 2명이다. 업무개시명령에 1차 불응할 때는 30일 이하 운행정지 처분이 내려지고, 2차 불응 시 화물운송자격이 취소된다.
정부는 압박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시멘트 업종에 이어 정유·철강 분야 업무개시명령 발동 준비를 마쳤고, 이를 교사·방조하는 행위자도 전원 사법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운송 거부 차주를 대상으로 '유가보조금 지급 1년 제한', '고속도로 통행료 감면 대상 1년간 제외' 등 제재 방안까지 예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과의 비공개회의에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를 겨냥해 "북한의 핵 위협과 마찬가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화물연대의 떼법뿐 아니라 건설노조의 조폭적 행태도 함께 뿌리뽑겠다"고 강조했다.
노동계 역시 총력 대응으로 맞서고 있다. 이날부터 단식농성에 돌입한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정당한 노동자의 투쟁에 불법, 떼법 단어를 써가며 탄압하고 있다"며 "지난 6월 노정 간 합의 이후 정부는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도둑놈이 매를 드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6일 전국 15개 거점 동시다발 총파업에 돌입한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화물연대의 정당한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비상식적 탄압의 수위가 도를 넘어선 것으로 판단한다"며 "탄압에 저항해 더 완강하게 투쟁하고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특히 국제노동기구(ILO)의 입장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앞서 화물연대는 ILO에 긴급 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고, ILO는 지난 2일 한국 정부에 개입(intervention) 공문을 보냈다.
ILO 협약을 비준한 정부는 최소 3년마다 국내법이 협약 조항에 부합하는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ILO는 회원국 노조 등 요청이 있으면 사안의 심각성 등을 종합 평가해 사무총장 직권 개입이 가능하다.
정부는 "개입이 아닌 '단순한 의견조회'에 불과하다"고 해명했지만, 국내법에 준하는 국제협약을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희원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는 "핵심 요구안을 내세운 노조의 파업은 ILO 헌장과 87호 협약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라며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을 사회 재난으로 규정하고 업무개시명령 내린 것은 그 자체만으로 심각한 파업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형사처벌 조항으로 위협하며 노동을 강요하는 것으로 ILO 제29조 강제노동 협약 위반에도 해당한다"며 "정부는 지난 20년간 화물차 특수고용노동자로서 노사정 관계를 구축해온 화물연대의 실체를 부인하고, 이중잣대로 불법 낙인을 찍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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