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전 세계적인 고물가와 고금리의 복합적인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정부와 국민이 고군분투하고 있는 엄중한 상황임에도, 화물연대는 국가 경제와 민생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집단운송거부 강행을 예고하고 있습니다…엄정 대응을 당부드립니다."
화물연대가 지난 24일 돌입한 총파업을 놓고 나온 말이다. '세계적 고금리와 민생' 등 경제 피해 우려가 두드러진다. 다만 해당 발언은 정부나 산업계의 메시지가 아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전날 각 시도경찰청과 화상회의에서 전달한 방침이다.
경찰 안팎에선 이런 지침을 이례적이라고 바라본다. 통상 집회·시위 관리에서 경찰이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엄정 대응을 경고한 적은 많았으나, 이번처럼 경제 우려 등을 들며 집단행동을 시작 전부터 부정적으로 묘사한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특히 윤 청장이 '화물연대 총파업은 경제를 악화한다'는 전제를 앞세운다는 점에서도 시선이 곱지 않다. 경제의 주체는 기업과 소비자뿐 아니라 노동자 등 임금 수령자도 포함하는데, 윤 청장의 발언은 이중 기업의 입장을 대변했다고 비칠 소지도 있어서다.
실제 윤 청장의 메시지는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회 등 경제 6단체가 같은 날 공동으로 낸 '화물연대 파업 철회 촉구 성명서'와 내용이 같다.
이들 단체는 "우리 경제가 고물가·고금리의 복합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정부, 국회, 기업, 근로자 등 모든 경제주체의 협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일방적인 운송거부는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독립·중립성이 생명이다. 파업 이전부터 집회의 불법성부터 의심한 대목도 적절한지 말이 나온다. 윤 청장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화물연대에 집단운송거부 계획 철회를 촉구했다"며 "불법행위를 강행하면 일체의 관용 없이 어느 때보다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화물연대는 전국 16곳에서 총파업을 전개한다. 이 가운데 경찰이 집회금지 통고 등 이번 총파업을 신고 단계부터 불법으로 규정한 흔적은 파악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 같은 입장이 나오자 화물연대와 전문가들은 유감을 드러낸다.
박연수 화물연대 정책기획실장은 "이번 총파업이 경제에 피해를 입힐지 여부를 경찰이 먼저 판단하는 자체가 권한 밖 처사"라며 "물리적 충돌 등 아직 불법 행위가 두드러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경찰이 나서서 불법이라고 엄포를 놓는 자체도 긴장감을 야기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청장의 역할은 행정력 등 주어진 권한으로 위법 및 국민에 실제 피해를 입히는 상황을 조치하면 된다"면서 "그와 관련 없는 고금리나 고물가 등을 거론하며 법이 보장한 파업을 자제하라는 경고는 최소한의 중립 의무를 포기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규탄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경찰이 정부와 호흡을 맞추는 게 현실이라지만, 경제 문제 등을 거론하며 파업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는 없다"며 "이는 경제부처가 판단할 몫이지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법과 원칙에 맞게 시위를 하는지 본 이후에 조치하면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경제 피해 등 여러 발언을 내놓았는데, 경찰이 함께 입장을 맞추고 대처하겠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는 등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박사영 노무사(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 역시 "화물연대 조합원도 노동자로서, 가계의 한 주체로서 경제의 중요한 주체"라며 "이들과 사측이 다투는 과정에서 경찰청장이 한쪽 편에 선듯한 발언을 한 점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다만 노조 집회에서 법적 잘못이 인정된 전례도 많아 현실을 고려한 지침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그간 원론적인 경고를 반복해 왔으나 각종 문제가 불거져 왔다"며 "이번엔 향후 법 집행의 정당성을 미리 확보하려는 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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