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주현웅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이태원 참사의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고, 사고 지점의 경찰 통제선까지 해제됐으나 국화꽃 향기는 갈수록 진해지고 있다.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이던 10월이 지나자 제법 차가운 공기가 불어온다.
그러나 추모 공간을 지키는 자원봉사자들은 변함없는 모습이다. 지난 14일 오후 12시쯤 <더팩트>가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난 20대 자원봉사자 이모 씨는 주변을 정리 중이었다. 자신은 날씨마저 잊은 반팔 차림이면서, 추모 쪽찌들은 차츰 세지는 바람 때문에 날아갈까 걱정돼 하나하나 테이프를 붙여 벽에 고정하는 게 그의 일이다.
이 씨가 이렇게까지 나선 이유는 일종의 치유를 위해서다. 그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다. 사고 당시 친구와 함께 깔려 있었다. 불행과 다행이 겹치면서 복잡한 심경은 트라우마로 변해갔다. 스스로 해선 안 될 생각도 했지만 친구 몫까지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떠나간 친구의 숨결이라도 끝까지 지켜주고 싶다.
"상황이 될 때마다 와서 틈틈이 정리를 돕고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자주 왔던 이태원인데…좋은 추억만 있을 줄 알았는데…."
오후 1시가 넘을 무렵 또 다른 자원봉사자 60대 강모 씨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추모 기간 내내 감자탕만 먹었다고 한다. 그 가게에서만 추모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치 내 자식처럼 느껴지는 청년들의 혼이 남은 곳인데, 가끔 몇몇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피우기도 해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강 씨는 2주 넘게 참사 현장에 머무르며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그는 기자를 사고가 난 골목으로 이끌었다. 한 철문을 보여줬다. 손자국처럼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성인 남성의 손 크기쯤 될까. 강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를 '절규의 손자국'이라고 일러줬다.
참사 발생 후 몇 차례 비가 왔는데도 지워지지 않은 손자국. 강 씨는 "사람 몸으로 눌려서 이렇게 들어갈 정도면 어느 정도 압박인지 가늠조차 안 간다"며 흐느꼈다.
자원봉사자들이 슬픔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아픈 마음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통제선이 해제된 뒤에도 시민들은 계속해서 이태원 골목을 찾았다.
현장을 지나던 40대 김모 씨는 "왜 기억해야 할 참사가 계속 늘어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네 청춘들이 이 좁은 곳에 꽉 끼어 비명을 질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진다"고 했다.
대학생 김상엽(24) 씨는 "참담하다"며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골목에서 보니 멀찍이 경찰서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게 보인다"며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을 보탰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골목은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쪽지로 채워지고 있다. 꼭 비통한 심정만 쓰여있지는 않다. 오히려 희생자들에 대한 격려도 추모의 또 다른 방법이다.
"오늘, 언니 오빠들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옷을 입고 왔어. 여러 사람이 언니 오빠들을 위로하는 말을 들었어. 미묘한 느낌이더라. 난 아직도 언니 오빠들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난 믿고 있어. 언니 오빠들이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고. 항상 응원하고 있다고. 그러니 우리가 언니 오빠들을 항상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고. 언니 오빠들도 우리 절대 잊으면 안 돼."(한 시민 추모 메시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