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이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인정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패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15일 오후 박 전 시장의 배우자 강난희 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권고 결정 취소'소송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피해자의 성희롱 피해를 사실로 인정했다. 이와 관련한 피해자 구제 및 제도 개선 조치를 권고한 인권위 결정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비서직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직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망인(박 전 시장)과 일하며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망인의 성희롱 행위를 사실로 인정하고 피해자 구제 및 제도 개선,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를 권고한 피고(인권위)의 결정에 재량권의 남용이 없다고 보인다"라고 밝혔다.
강 씨 측은 피해자가 박 전 시장과 함께 사진을 찍거나 '인품이 훌륭하셔서 배울 것이 많다'라고 말하는 등 친밀감을 표시한 점에 비춰 성희롱 피해를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는 서울시장 비서직이라는 공무원으로서 업무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망인과의 관계를 고려해 어느 정도 친밀감을 표시할 수 있다"며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반드시 표정이 어두워지고 피해야 한다는 것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피해자의 양상을 간과한 것이다. 망인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성적 굴욕감을 줬다고 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강 씨 측을 대리한 정철승 변호사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사랑해요', '꿈에서 봐요'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며 최근 관련 파일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 같은 메시지를 (피해자가) 보낸 건 사실이나 이성간 감정이 아닌 존경의 표시로 관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선고 뒤 강 씨 측 대리인은 취재진과 만나 "원고 입장으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와 많이 당황스럽고 유감을 표하고 싶다"면서도 "재판부에서 실체적 판단에 나아가 준 것만 해도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다고 생각된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다만 세세한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워 유족과 잘 상의해 어떤 점이 부당한지 잘 밝혀보도록 하겠다"라고 덧붙였다.
박 전 시장은 2020년 7월 서울 북악산 숙정문 근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그가 부하 직원인 서울시 공무원에게서 강제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졌다.
인권위는 지난해 1월 박 전 시장 관련 의혹을 조사한 뒤 "박 전 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행한 성적 언동 일부가 사실이며 이는 성희롱"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에 피해자 보호 방안과 2차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이에 강 씨 측은 사법기관도 아닌 인권위의 사실조사에 근거한 내용을 바탕으로 성적 비위가 밝혀진 것처럼 결정했다며 같은 해 4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