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스스토리] 한국은 112, 앙골라는 113…지구 반대편 '치안한류' 전파


고태수 중랑경찰서 외사계 경장 인터뷰
포르투갈어 능통해 앙골라 현지 교육
가정폭력 노출 이주여성 보호에도 전념

고태수 중랑경찰서 외사계 경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중랑구 중랑경찰서에서 더팩트와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선화 기자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서울에서 1만여km 떨어진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는 113 긴급신고센터가 운영 중이다. 500억원 규모의 유상원조를 받아 한국 경찰의 112 신고시스템을 본떠 만들었다. 우리나라 경찰의 우수한 치안기법 등을 해외에 전수하는 '치안한류' 사업의 일환이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교육을 진행한 건 고태수 경장이었다. 서울 중랑경찰서 정보안보외사과 외사계 소속 고 경장은 포르투갈어 전공으로 2016년 경찰에 특채됐다. 포르투갈어는 앙골라 공식 언어다. 고 경장이 통역까지 도맡아 한 국가의 새로운 치안 체계 구축에 한몫한 셈이다.

고 경장은 "경찰 관련 특수 분야니까 일반 통역으로는 뉘앙스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며 "한국에 있는 현지 친구들에게 과외 받아가며 표현이나 용어 등을 공부했다. 파견을 다녀오면서 큰 보람을 느꼈고, 우리 치안 시스템이 체계적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통상 경찰은 사회 질서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한다. 외사경찰 임무도 다르지 않지만, 대상은 외국인 혹은 외국 관련기관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관련 범죄를 예방하고, 피해 회복을 지원하며 정보도 수집한다. 수사에 관여하지 않는 대신 사건 발생 전, 후를 책임지는 것이다.

고 경장은 "중랑구에 등록된 외국인이 4600명 정도 된다. 그중에서 4분의 1이 이주민"이라며 "주로 중국, 몽골, 베트남 등 이주여성이 많은데 가정폭력 등 문제들이 빈번하다. 가정 내 사건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범죄피해 이주여성 보호·지원 협의체'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노력한다. 협의체는 경찰청 외사국이 만든 제도로, 여러 기관이 참여해 이주여성 등을 돕는다. 중랑서의 경우 지난해와 올해 각 1건씩 지원해 경찰청, 서울청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령 인도네시아 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한 경우 다문화센터가 방문교육지도사를 파견해 피해자 상황을 관찰한다. 결혼이민가족지원연대는 거주 쉼터를 지원하고, 중랑구약사회는 지원금과 가정용 응급키트 제공, 구청은 무료 상담을 진행한다. 외사계는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 식이다.

고 경장은 "가정폭력 등 신고가 잦은 우즈베키스탄 이주여성 가족이 있었는데, 살펴보니 중학교 1학년 아이가 탈선하고 있었다"며 "복싱을 하고 싶은데 가정 형편이 안 좋다고 하더라. 서울시 체육회 등과 접촉해 무료복싱 수업을 제공하고 양육 상담도 지원했다"고 말했다.

고태수 경장은 종이로 된 공문보다는 매뉴얼을 쉽게 이해하도록 시나리오와 콘티를 직접 짰다며 실제 몽골 이주여성을 섭외해 동영상으로 만들었는데, 큰 호응을 얻었다고 했다./이선화 기자

외국인의 언어‧문화적 간극을 좁히는 것 역시 외사계 역할 중 하나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외국인이 모국어로 경찰에 신고해 소통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경찰 업무 휴대폰엔 외국인을 위한 '3자 통역' 앱이 있지만, 대부분 잘 모르거나 쓰지 않는다고 한다.

고 경장은 지난해 3자 전화통역 서비스 교육 동영상을 제작했다. 그는 "종이로 된 공문보다는 매뉴얼을 쉽게 이해하도록 시나리오와 콘티를 직접 짰다"며 "실제 몽골 이주여성을 섭외해 동영상으로 만들었는데, 큰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기관과 연계해 수시로 범죄예방교육도 진행한다. 코로나 확산으로 대면교육이 불가능할 때는 '라이브톡' 기능을 활용했다. 고 경장은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 외국인들이 들어오도록 한 뒤 실생활 법률의 변화, 외국 관련 정책, 외국인 보육료 지원 등 교육을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마약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보 활동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내에서 외국인들의 마약류 범죄가 해마다 증가하는 만큼, 마약 유통 관련 정보를 수집한다. 마약범죄 예방 리플릿도 제작해 캠페인 활동도 추진 중이다.

고 경장은 "외사는 통역만 한다고 오해하곤 하는데, 언제든 다른 부서로 갈 수 있는 똑같은 경찰"이라며 "다만 일하면서 외국인들에 대한 이해도가 늘었고, 한국의 경찰 시스템을 외국에 전수해줄 수 있는 경험을 한 것만으로도 경찰이 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강조했다.

spes@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