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이현·조소현 인턴기자] "영업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많이 했어요. 자꾸 죄 짓는 기분이 들어서…."
서울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안모 씨는 "비가 엄청 많이 올 때도 이 근처는 늘 사람이 많았다"며 "오늘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호프집을 운영하는 60대 김모 씨도 "젊은이들은 즐기고 그냥 놀러온 것뿐인데 누구 탓을 할 수도 없다"며 "이제 누가 이태원 오겠어요. 부모들도 가지 마라 할 거고. 하루 종일 포장 주문 하나 말고는 없었어요. 상인들 다 그래요"라고 했다.
불과 일주일 전뿐 아니라 통상 금요일 밤 이태원은 사람으로 붐볐지만, '핼러윈 참사' 이후 첫 '불금'인 지난 4일 밤 이태원 거리는 썰렁했다.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객들과 인파를 통제하는 경찰이 거리를 메웠다.
한 30대 카페 사장은 "저번주 금요일은 핼러윈 때문에 사람이 몰렸는데 지금은 당연히 조용하다"며 "상점마다 생각하는 게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사고 난 쪽 거리는 아마도 올해에는 문을 열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상 이태원은 10월 중순 이태원 지구촌 축제와 보름 뒤에 열리는 핼러윈,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다. 코로나19로 침체됐던 상권이 회복되길 기대하던 인근 상인들은 참사로 가슴 아플 뿐 아니라 매출 등 현실적인 걱정까지 짊어졌다.
이날 밤 이태원역을 찾은 추모객들 역시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김가현(24) 씨는 "집에 가는 길에 친구를 보러 잠깐 들렀다"며 "친구가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일상 생활로 얼른 돌아가야 하는데 아직 못 돌아가고 있다"고 울먹였다.
간호사인 이혜원(28) 씨는 "참사 당시 현장에 있었더라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고,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낀다"며 "평소 이태원에 자주 왔었는데, 이제 별로 오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다. 주변 친구들도 다 그렇게 말한다"고 말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에 따르면 지난달 31일부터 이태원 참사 관련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세월호 때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내 한복판에서 참사가 발생한 만큼 받아들이는 불안과 공포가 더 크다는 것이다.
대학생 방상현 씨는 "저희 또래들이 이런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며 "학과 내에서도 얘기만 해도 다들 힘겨워하는 분위기다. 개인적으로는 영상을 보기가 너무 힘들다. 그 상황을 떠올리면 잠을 못 자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태원과 다른 풍경도 있다. 과밀지역으로 꼽히는 지하철 홍대입구역에선 평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가득찼다. 다만 대부분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털어놨다. 당시 이태원에 있었다는 한 시민은 인파가 운집하는 장소 자체가 무서워졌다고 했다.
박모(22) 씨는 "사고 나기 일주일 전에 이태원을 방문했다"며 "이태원의 골목, 음식점, 사고 난 그 거리가 너무 생생하게 기억난다.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가슴이 아프고 두려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26살 한 여성은 "당시 그 장소에 있었는데 다행히 9~10시 사이에 나왔다. 운 좋게 한 시간 차이로 운명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돋기도 한다"며 "이태원뿐 아니라 사람 많은 곳을 안 갈 것 같다. 서울에 사니까 쉽지 않겠지만 최대한 안 가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모(22) 씨는 "참사 당시 현장에 있던 친구가 너무 무섭다면서 일주일째 방에서 안 나오고 있다"며 "트라우마라는 게 한번 빠지면 얼마나 깊어지는지 알기 때문에 생각 안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