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지자체, 참사 형사책임 질까…"단정은 시기상조"


쟁점은 '예견 가능성'과 '안전의무'
매년 인파 몰린데다 첫 '노마스크' 핼러윈
"위험 예측했을 것" vs "자발적 모임 통제 못해"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나흘째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새롬 기자

[더팩트ㅣ송주원·김세정 기자] '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 부실 대응에 따른 법적 책임에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에서는 재난 시 피해를 최소화할 의무가 있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번 참사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별다른 조처가 없었다면 직무유기 등 범죄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반면 개인의 자발적 모임 통제에 한계가 있어 형사처벌은 적절하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유사 사건 판례 보니…경찰 책임 입증이 더 까다로워

이태원 참사와 가장 비슷한 선례로는 2005년 10월 경북 상주 콘서트 압사 사고가 꼽힌다. 지역 축제 일환으로 상주시가 MBC와 함께 주최한 가요콘서트장에서 많은 인파가 출입문으로 몰리며 11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행사를 주최한 상주시장과 시 공무원, MBC 관계자들은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 등을 대법원에서 확정받았다. 이들은 상고심에 이르러서도 사고를 예견하거나 사고 발생을 방지할 구체적 의무가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은 당시 "관중 입·퇴장 과정상 통제 불능으로 무질서와 혼란이 야기돼 사람이 사상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고, 인력 동원 계획을 수립하는 등 대책을 강구해 인명피해를 방지해야 할 직접적 주의 의무가 있었다"라고 책임을 인정했다.

고장 난 시설물을 방치해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에서도 지자체 책임을 인정했다. 부산지법은 9월 '부산 초량 지하차도 참사'와 관련해 부구청장 등 공무원 11명에게 금고형 등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장소는 오래전부터 방재시스템이 설치돼 있었지만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지하차도의 출입 통제 시스템 역시 고장 난 상태였다"며 "대비책을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은 담당 공무원의 책임이 분명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 발생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검찰과 피고인 모두 항소한 상태다.

구조 업무 일선에 있는 경찰의 경우 판단이 엇갈렸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지휘관이었던 김경일 전 목포해경 123정장은 승객 퇴선 안내와 해경 구조활동 지휘를 소홀히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에서 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 대법은 "해경 지휘부에도 공동책임이 있다"라고 지적했지만, 이후 기소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 등 지휘부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고 당시 통신수단으로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는 등 조처를 하기는 했고, 침몰 상황의 급박성을 인식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다. 이 사건은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항소로 다음 달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현장에 투입된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현장감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법조계 "경찰 과실 판단은 시기상조…지자체 책임은 따져볼만"

지난 판례를 종합하면 구조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경찰의 경우 구조 실패에 따른 질책과 비판을 넘어 형사 책임까지 지울 수 있는지를 두고 법원도 매우 고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 참사 역시 지금까지 드러난 사정만으로 경찰의 형사적 책임을 확신하기 이르다는 의견이 법조계 중론이다. 하진규 변호사(법률사무소 파운더스)는 "중대한 과실이 있어야 처벌 가능한데 여기서 중대한 과실이란 신고를 받고도 일부러 출동하지 않은 사정 등이 밝혀져야지, 지금 드러난 사정만으로는 경찰의 책임을 따지기 어렵다"라고 봤다.

지자체 책임을 놓고는 법률가 의견도 엇갈렸다. 주최자가 없는 이상 재난안전법상 지자체에 부여된 안전 의무 이행 정도를 평가해야 하는데, 의무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가 쟁점이다. 재난안전법은 "이 법은 재난을 예방하고 재난이 발생한 경우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국가와 지자체의 기본적 의무임을 확인한다"라고 규정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주최자가 있는 행사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주최자에게 책임이 있지만, 주최자가 없는 경우에는 국가와 지자체에 책임이 있다"라며 "하지만 안전 의무가 있더라도 이 의무에 따라 어떤 업무를 해야 한다는 구체적인 법적 지침은 없기 때문에,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무유기 등 형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해석하는 건 무리하다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개인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몰린 인파로 발생한 사고라 지자체 관리 범위를 넘어선 문제라는 분석도 있다. 하 변호사는 "이번 사고는 주최사가 사람들을 끌어모은 행사가 아니라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모임에서 발생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라며 "지자체에 안전 의무가 부여돼 있는 건 사실이지만 개인의 자발적인 모임에서의 사고를 모두 예상하고 통제할 수 없다. 지자체가 자발적인 모임까지 관리하는 건 개인의 기본권 침해 여지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매년 핼러윈마다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렸고,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첫해라는 사정까지 고려하면 과실치사죄의 성립 요건 중 하나인 '예견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장윤미 변호사는 "매년 핼러윈 때마다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을 많은 사람이 방문했고, 올해는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첫 해라 사람들이 많은 인파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재난안전법상 지자체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주최자가 없다는 이유로 지자체가 책임을 지지 않는 건 비겁한 변명"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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