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을 '민중의 지팡이'라고 합니다. 전국 14만 경찰은 시민들 가장 가까이에서 안전과 질서를 지킵니다. 그래서 '지팡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범죄도시'의 마동석이나 '신세계'의 최민식이 경찰의 전부는 아닙니다. <더팩트>는 앞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거나 무대의 뒤 편에서 땀을 흘리는 경찰의 다양한 모습을 <폴리스스토리>에서 매주 소개하겠습니다.<편집자주>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경기 화성 동탄경찰서 소속 김연숙·이은미 경위는 칼로 물을 벨 수 있는 경찰관들이다. 크게 싸워도 뒤돌아서면 금방 서로를 찾는 게 부부 사이라지만, 가끔은 본인과 자녀의 안전을 위해 배우자를 떨어트려야 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두 경위는 학대전담경찰관(APO)으로서 가정폭력을 전담하며 이처럼 불편한 일에 매진하는 '환상의 콤비'로 통한다. 서로뿐 아니라 지자체 및 여러 상담 기관과 유기적 호흡을 맞춰가며 지역 사회의 가정을 살핀다.
"과거에는 물리적 폭력만 가정폭력으로 일컬었지만 이제는 달라요. 언어폭력도 해당하고요, 사실혼 관계의 스토킹도 엄연한 가정폭력 범죄랍니다. 다양한 형태의 범죄가 한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거예요. 여러 기관과 힘을 합쳐서 세심히 바라봐야만 하죠."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은 가해자에 대한 수사를 지원하고 피해자 안전조치 및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모니터링 등의 업무를 맡는다.
가정사를 다루는 특성상 여느 부서보다도 사건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명백한 범죄에 고소·고발이 들어와도 자녀 양육 문제 등으로 중도에 취하하는 일도 적지 않아 쓴 한숨을 내쉬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신고 이력이 있는 피해자에 먼저 꾸준히 연락을 취해 상태를 살펴야 하고, 필요하면 상담 기관이나 각종 지원책을 발굴 및 연계해줘야 해 사후관리에 드는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가정폭력 전담팀이 타부서 이직률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인 이유다.
올해로 APO 8년째인 이 경위는 경기남부경찰청에서 기획 업무를 맡았었다. 그러던 중 통계로만 살피던 가정폭력 실태를 직접 개선해보겠다는 의지가 생겨 현장에 자원했다. 경찰이지만 때로는 사회복지사, 상담사가 될 때도 있어 적성에 꼭 맞는단다.
"가정폭력 피해자 모두가 늘 어둡지만은 않아요. 어르신들이나 혼자 사는 분께 연락을 드리면 자녀나 지인보다 자주 연락한다며 반겨 주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보람을 느끼죠. 가정폭력에서 벗어나 밝은 모습을 되찾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잖아요."
폭력 범죄를 엄단하고 예방하는 게 임무지만, 단호함보다는 공감과 소통이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이 경위는 누구나 부담 없이 피해를 호소하고 도움을 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창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동탄 호수공원 인근에 위치한 '화성시 성폭력·가정폭력 통합상담소'는 고심의 결과물 중 일부다. 경찰관, 사회복지사, 상담사가 상주한 이곳은 피해자라면 언제든 문 열고 들어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전국 유일의 공간이다. 이 경위는 설립에 아이디어를 보태 특진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특히 동탄경찰서 안에는 파견 나온 화성시청 아동전담 공무원 5명도 머무르고 있다. 가정폭력은 아동학대도 포함하는 만큼 신속하고 유기적인 대응을 위해서다. 역시 전국에서 유일한 조치로서 현재 일부 지방청에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 경위는 모든 성과가 7년 선배인 김 경위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경기남부청 소속 당시 김 경위의 '대활약'을 바라보며 꼭 같이 일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에 동탄서로 발령받은 뒤 김 경위에 마음을 수줍게 고백(?)하고 함께 '열일'을 다짐했다고.
이에 김 경위는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확실하다"며 웃음을 보였다. 사실 그도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으로서 만만찮은 업무를 못 이겨 도망치고 싶은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위와 호흡을 맞추게 돼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열의가 높다.
"이 경위는 후배지만 워낙 훌륭해요. 뭣보다 저희 업무는 피해자의 심리를 면밀히 살펴야 해 혼자보단 동료와 같이 고민하는 게 매우 중요하거든요. 또 담당 경찰관도 피해자의 상처를 같이 안게 돼 힘들 때가 있다 보니, 서로 위로하고 힘을 보태며 든든함을 느껴요."
가끔은 피해자에게 되레 위로를 받기도 한다. 어느 날 한 피해자는 김 경위에 힘든 사정을 토로하면서도 "경찰관도 사실 직업이 이렇다 보니 힘들지 않겠나"라며 "제 얘기에 너무 깊이 빠지지 마시고, 문 닫고 나갈 땐 잊으시길 바란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저는 문 닫고 나가면 전부 잊으라는 그분 말씀을 오히려 늘 가슴에 담고 있어요. 저 스스로를 돌볼 줄 알아야 더 많은 피해자분께 찾아가고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는 중대 피해자를 먼저 발굴해 신속히 보호조치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고 싶어요."
두 경위는 사법 체계에 아쉬운 마음도 털어놓았다. 경찰은 가정폭력 사건 접수 뒤 한두 달이면 일을 마치지만, 법원의 벌금이나 상담위탁 등 처분은 길게는 1년이 지나야 나온다. 이런 탓에 가까스로 화해한 부부가 최종 처분 뒤 다시 싸우는 사례가 적지 않다.
"법원도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아 어쩔 수 없겠지만 아쉽긴 해요. 부부 관계 회복도 적기가 있는데, 뒤늦은 법원 판단이 부부의 아픈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해 갈등을 또 부르기도 하거든요. 도돌이표를 끝낼 제도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chesco12@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