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자 마자 엄마와 헤어져야 하는 아기들이 있다. 그 생명의 첫 공간은 베이비박스다.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비판과 함께 더 큰 불행을 막기위한 차선책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논쟁은 불가피하게 부모가 키울 수 없는 아기를 국가가 어떻게 책임지느냐로 향한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엄마와 아이들을 지키는 일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더팩트>는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엄마들과 아기의 안타까운 현실을 상.하편으로 나눠 싣는다.<편집자주>
[더팩트ㅣ김이현·조소현 인턴 기자] "엄마라고 인사를 하기에도 너무 미안하고 죄스럽지만, 엄마는 너를 데리고 함께 갈 수가 없어. 거짓말이라도 해서 키워볼까 생각도 했지만 해선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됐어. 너무 사랑하고 미안해."(2018년 O월 OO일)
"처음 너를 봤을 때 눈, 코, 입, 머리카락이며 안 예쁜 곳이 없더라. 나에겐 너무 과분할 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너니까 못난 나보다 더 소중히 아껴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주려 해."(2018년 O월 OO일. B형간염 1차 접종)
"저는 미혼부입니다. 아기 엄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하게 됐습니다. 수많은 생각과 고심 끝에 여기 오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면목 없지만 좋은 부모 만나서 좋은 추억만 가득했으면 합니다."(2014년 O월 OO일 새벽 2시25분)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가는 부모가 남긴 마지막 편지다. 부모는 아기가 태어난 날짜와 시각, 몸무게 등 특징을 적어둔다. 이 편지는 아기가 시설로 보내지거나 입양될 경우 아기와 부모를 연결하는 유일한 기록이 된다.
죄책감을 꾹꾹 눌러 쓴 부모는 '미안하다'는 표현을 반복한다. 못난 엄마를 용서하지 말라거나 준비가 되면 꼭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내용도 있다. 2000여 통 가까이 되는 편지 중 눈물 자국이 남아있는 부분도 여럿이다.
베이비박스를 찾는 대부분은 '엄마'다. 그중에서도 기구한 사연이 있는 미혼모가 많다. 가족에게 임신 사실을 숨기고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거나, 성폭행을 당해 출산하거나, 힘든 환경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장애가 있거나. 심지어 모두 미성년자의 사례다.
이 고통을 혼자서 감내한 엄마들에게 베이비박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베이비박스 이혜석 상담사는 "한국에서 미혼모를 바라보는 입장은 절대 너그럽지 않다"며 "출산 직전까지 병원 안 가는 엄마들도 있다. 배가 불러오면 일을 그만두니 생활비도 없다"고 설명했다.
경제 사정은 녹록지 않지만, 최대한 친모가 아기를 기르도록 설득한다. 이 상담사는 "아기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경우엔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시스템과 연결되도록 안내하고, 주거·의료·생활비 등 저희도 최대한 지원한다"며 "아기는 가족 품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베이비박스는 홈페이지, 카카오톡, 전화 등을 통해서도 상담을 진행한다. 위기에 직면한 엄마들이 입을 떼자마자 하는 첫 마디는 대게 "도와주세요"다. 총 4명의 전문 사회복지사가 24시간 돌아가며 엄마들과 대화하고, 위로한다.
맡겨진 아기들은 보육사의 몫이다. 보육사는 총 3명에 불과하기에 24시간 아기들을 돌볼 순 없다. 75명 안팎의 자원봉사자들 역시 아기들의 '엄마'가 된다. 베이비박스는 주사랑공동체교회가 만들었다. 100% 후원금으로 운영되지만, 모두 개신교 신자로만 구성돼 있는 건 아니다.
7개월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민경(42) 씨는 "유튜브에서 아기 학대 뉴스를 보고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했다"며 "봉사하면서 오히려 아기들에게 받는 게 더 많다. 감사함과 따뜻함, 그리고 뿌듯함을 많이 받아 간다"고 말했다.
이어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제일 크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들이 맡겨줘서 아기가 제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며 "부모가 무책임하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여기까지 용기 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 듯하다"고 했다. 이 씨 또한 두 아이의 엄마다.
황민숙 주사랑공동체 위기영아보호 상담지원센터장은 "베이비박스는 존재 이유가 분명하다"며 "무엇도 생명을 대신할 수는 없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미혼(부)모들과 아기들, 사회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