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지방경찰청장 등 3명, 농지법 위반 '가짜 농부' 의혹


인천·대구경찰청장, 본청 공안정보국장 농지법 위반 정황
농지법 원칙 '자경'…위법 지적에 "재산가치 적다" 해명

경찰 고위 간부들의 농지 보유 현황과 직접 농사를 짓는지(자경) 여부 등을 확인한 결과 일부 고위직 경찰들이 노후 대비 등을 이유로 법을 위반한 채 농지를 보유해온 정황을 파악했다./박헌우 인턴기자

[더팩트ㅣ대전·예천·청송=주현웅 기자] 경찰 고위 간부들의 농지 보유 현황 등을 확인한 결과 지방경철청장 등 일부 고위직 경찰들이 노후 대비 등을 이유로 법을 위반한 채 농지를 보유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17일 <더팩트> 취재진이 재산 등록 대상인 경찰 간부들의 농지 소유 및 자경 여부 현황을 점검해보니 김남현 대구경찰정장과 이영상 인천경찰청장, 조지호 경찰청 공공안녕정보국장은 실제로 농지를 소유하면서도 고물상 임대를 주거나 다른 사람에 임대 경작을 하게 하는 등 '경자유전'(耕者有田)의 농지반 위반 정황이 파악됐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해 이른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고위 공직자들의 농지법 위반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밝혀져 논란이 일 전망이다. 최근까지도 경찰은 헌법의 '경자유전'(경작자가 농지를 소유해야 함) 원칙을 위반한 공직자들에 대한 고소 및 고발 사건 등을 잇따라 진행하고 있다.

◆김남현 대구청장의 아스팔트 논…고물상에 임대

김남현 대구경찰청장은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였던 2003년 11월 이 논을 매입했다. 이곳에서 약 120㎞ 정도 떨어진 경기 용인에 거주하던 때였다. 김 청장은 대전에 연고는 물론 인근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대전=주현웅 기자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의 한 땅. 지목이 '답'(논)이지만 농사 지은 흔적은 없었다. 아스팔트로 된 땅 위에는 고물상이 들어서 있었다. 김남현 대구경찰청장은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였던 2003년 11월 이 논을 매입했다. 이곳에서 약 120㎞ 정도 떨어진 경기 용인에 거주하던 때였다. 김 청장은 대전에 연고는 물론 주변에서 근무한 적도 없다.

해당 고물상 인근에서 30년 넘게 살았다는 한 주민은 이 땅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했다. 공터로 방치되다 어느 순간 고물상이 들어섰고, 3~5년 전부터는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땅을 사러 왔다는 이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의 논은 267㎡로 작은 규모지만 재산 가치는 큰 편이다. 공시지가가 김 청장이 매입한 당시 ㎡당 11만2000원에서 올해 49만100원으로 약 5배 상승했다.

김 청장은 "고물상에 임대했고 임대수입에 대한 종합소득세를 납부 중"이라며 "지목은 농지지만 사돈 등과 함께 매입하기 전부터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돼 사실상 잡종지 등으로 사용된 곳"이라고 답했다. 이어 "곧 퇴직이니 사돈 등과 카페라도 차리든 뭐라도 해볼 계획"이라며 "도시계획구역이라 농지취득자격증명이 없어도 돼 하자가 없는 땅"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서성민 변호사(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농지를 전용한 사례로서 잘못된 해명"이라며 "법은 본인 농업경영에 이용할 사람만 농지를 취득하도록 하고, 상속 등 농지법이 허용한 경우 외에는 농지 소유에 관한 특례도 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관련 부처에서도 김 청장 해명에 의문을 제기한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지목이 농지인 이상 농작물을 경작해야 한다"며 "만약 기존 농지가 도시계획구역에 포함돼 자경이 어렵다면 전용허가를 받은 뒤 지목을 변경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에서도 "주거지역 등의 농지를 여러 사정상 다른 용도로 쓰는 중이라면 전용허가 후 60일 안에 지목을 바꿔야 한다"며 "어기면 공간정보관리법 위반으로 행정처분 대상"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전시 한 관계자는 "통상 농지 외 다른 지목은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세금 부담이 센 편"이라며 "이런 이유로 농지를 다른 용도로 쓰되 지목은 안 바꾸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영상 인천청장의 200㎞ 떨어진 밭…"자격 있는 사람 비난하라"

경북 예천군 보문면 기곡리의 2212㎡ 규모인 한 밭은 누군가 상추 등을 가지런히 심어 놓은 상태였다. 지난 6월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이영상 인천경찰청장이 부모로부터 2008년 증여받은 농지다. 그러나 이 청장은 이곳에서 약 200㎞ 떨어진 수도권 모처에 살고 있다./예천=주현웅 기자

경북 예천군 보문면 기곡리의 2212㎡ 규모인 한 밭은 누군가 상추 등을 가지런히 심어 놓은 상태였다. 지난 6월 치안정감으로 승진한 이영상 인천경찰청장이 부모로부터 2008년 증여받은 농지다. 그러나 이 청장은 이곳에서 약 200㎞ 떨어진 수도권 모처에 살고 있다.

상추밭 인근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 청장의 형이 이 동네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다"며 "○○(이 청장의 모친)가 장남에 물려준 땅인 줄 알았는데, 이 청장한테 증여한 사실은 몰랐다"고 했다.

주민들 증언대로라면 이 청장 역시 위법 가능성이 있다. 농지법은 '1만㎡ 이하의 상속지'만 자경 원칙의 예외를 허용한다. 증여받은 농지도 직접 농사를 짓는 게 원칙이란 의미다.

이 청장은 "제가 직접 농사를 짓는 게 옳지만 증여받았을 당시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자경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직후 바로 처분하기가 모호해 형님이 농사를 도와주고 제가 보유하는 상태"라고 해명했다.

이어 "위법 여부를 떠나 부모한테 받은 땅을 선뜻 팔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라며 "땅을 처분할지, 퇴직 후 그곳으로 갈지는 경과를 지켜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는 특히 "땅의 가치를 보고 증여받은 게 아니다"라며 "부모가 준 땅인데 이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의 비판은 받아들이겠다"고도 덧붙였다.

◆조지호 공안정보국장, 위탁 농사…"팔면 손가락질 당해"

경북 청송군 안덕면 9610㎡ 규모의 논과 과수원 등은 잘 가꿔진 상태였다. 이웃들은 조 국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농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주민은 출세해서 높은 경찰이 됐는데 (조 국장이)여기서 농사를 왜 짓겠나라며 농사 안 지을 거면 우리가 지을 테니 팔으라는 의사를 전달한 적도 있지만 절대 안 판다고 불평했다./청송=주현웅 기자

경북 청송군 안덕면 9610㎡ 규모의 논은 잘 가꿔진 상태였다. 이웃 주민들은 "저 집이 농사를 짓고 있다"며 인근의 한 주택을 가리켰다. 지난 6월 치안감으로 승진한 조지호 경찰청 공공안녕정보국장의 농지인데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은 한 노인이었다. 이 노인은 "땅 주인은 조지호인데 그를 본 적은 없다"며 "내가 대신 농사를 지어주고 수확물의 30%를 조지호 매형 집에 가져다 놓는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조 국장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농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주민은 "출세해서 높은 경찰이 됐는데 (조 국장이)여기서 농사를 왜 짓겠나"라며 "농사 안 지을 거면 우리가 지을 테니 팔으라는 집도 있었지만 절대 안 팔더라"고 불평했다.

조 국장도 이를 인정했다. 그는 "연로하신 아버지가 농사짓기 힘드신 상태에서 저와 상의도 없이 증여를 하셨다"며 "증여세를 냈던 기억은 있는데 재산 가치는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치안감 승진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돼 올해 농어촌공사와 위탁 계약을 맺었다"며 "시골에선 이를 처분하면 '부모 땅 팔았다'고 손가락질 당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의 소지는 있다. 자경 원칙을 면하기 위한 농어촌공사 위탁은 국정감사에서도 꼼수로 지적돼 왔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농지 투기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국감에서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급증한 위탁 건수를 꼬집으며 "농어촌공사가 불법 농지 투기의 창구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질타했다.

이에 조 국장은 "제 입장에선 해당 농지 인근에 거주하는 친척들이 사주면 가장 좋은데 그분들 형편상 말을 꺼내기 힘들다"며 "일단 위탁을 유지하고 퇴직하면 귀향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 경찰간부 3명은 앞으로도 농지를 처분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대부분이 농지법 위반에 관한 질문에 '재산 가치가 크지 않다'는 해명에 집중했다. 법과 원칙에 가장 엄격해야 할 경찰에서 이 같은 태도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효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경찰은 현재 고위공직자들의 농지법 위반 수사를 진행 중인 상황"이라며 "법 집행 기관인 경찰의 고위 간부들이 원칙을 어기는 상황도 심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문제 의식마저 안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농지법 위반은 바라보는 민심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데다, 농민단체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문제를 제기해 왔던 사안"이라며 "농지를 소유만 한 이들도 경각심을 가져야겠으나 지자체 등 행정기관의 엄밀한 실태조사와 처분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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