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헌일 기자] "소각장 백지화! 소각장 백지화!"
지난달 30일, 해가 채 뜨지 않아 어둑한 오전 6시10분쯤. 오세훈 서울시장이 거주하는 광진구의 한 아파트 단지 앞은 10여 명의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로 가득찼다.
이들은 경찰이 설치한 집회유지선 안에서 페트병으로 만든 도구를 양 손에 들고 서로 맞부딪치면서 박자를 맞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음은 약 30m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작지 않은 수준이었다.
현재 가동 중인 상암동 쓰레기 소각장 지하에 새 소각장을 하나 더 건설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을 반대하는 마포소각장 신설 백지화 투쟁본부(이하 투쟁본부) 시민들이다. 26일부터 5일째 매일 새벽 시위를 진행 중이다.
시위 도중 이 아파트 주민대표 이금영(65) 씨가 다가가 "주민 불편이 극심하다"며 자제를 요청했다. 이에 투쟁본부 측은 "오 시장이 불통이라 어쩔 수 없다"며 다시 구호를 외쳤다.
이 씨는 "아파트에 어린이부터 노약자까지 불편한 분들이 많은데 아침마다 이렇게 시위를 하니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다"며 "제게도 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 출근길에 방해도 되고, 차라리 낮에 오면 되지 않나"라고 하소연했다.
이어 "지금은 지방자치 시대다.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들이 다 있고 시에서 행정적으로 할 수 있는데 이러면 우리 주민들만 피곤하다"며 "행정적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위가 계속되던 6시 30분쯤 오 시장이 출근길에 차를 멈추고 시위대로 다가갔다.
오 시장은 "뜻이 다 전달됐으니 그만해달라. 첫날 2시간 10분이나 시청에서 대화를 했고, 이 자리에서 뵌 지 5일째인데 더 이상은 자제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에 투쟁본부의 한 시민은 "뜻이 전달됐다면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받아쳤다. 또 입지선정위원회 선정 절차에 하자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시에서 공람을 통해 공개한 관련 정보의 상당 부분이 '***' 표시로 가려져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오 시장은 "입지선정위원회에서 정한 것을 시장이 백지화할 권한은 없다"며 "앞으로 토론도 하고, 법적 절차를 거치면서 판단될 문제다. 모든 행정은 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진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26일 오 시장은 출근길에 시위를 마주쳤고, 당일 오후 시청에서 투쟁본부 측과 면담을 가졌다. 면담 이후에는 투쟁본부 측 요구에 따라 이달 5일로 예정했던 주민설명회를 연기하는 한편 "백 번 아니라 천 번이라도 주민들을 만나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며 대화 의지를 밝혔다.
반면 투쟁본부 측은 시가 이 계획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은 "오 시장 출근길에 잠깐이라도 얼굴 뵙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나오게 됐다"며 "그런데 시장은 '제가 아닌 입지선정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정보 공람 첫날 마포구에 관련 회신을 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띄웠다고 한다. 급하게 밀어붙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꼬집었다.
변형철 투쟁본부 위원장은 "애초에 주민설명회 일정도 공람이 끝난 이후로 잡는게 상식적인데 공람 기간 중 잡는게 말이 되나"라며 "초스피드로 모든 걸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람도 시청에서만 가능하다"며 "지금 같은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인터넷으로 하면 되는 걸 주민들에게 와서 한 명씩 줄서서 확인하라는 건 의도적인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투쟁본부는 앞으로도 매일 오전 6시 출근길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주말인 이날 오후에는 같은 장소에서 100여 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예고했다.
변 위원장은 "입지 선정 백지화가 목적"이라며 "철회가 없으면 (시위를) 1년 열두달 내내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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