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명 한 맺힌 '소년판 삼청교육대'…유해발굴 첫삽


"제 손으로 친구 묻었던 트라우마 평생 가"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 시굴조사가 2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서 열린 가운데, 관계자들이 시굴을 하고 있다. /박헌우 인턴기자

[더팩트ㅣ김이현 기자] "도망치다 바다에 빠져 죽은 친구들이 둥둥 떠내려오니까 여기에 묻었는데…."

안영호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부회장이 선감묘역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1966년 '선감학원'에 끌려온 안 부회장은 물에서 떠내려온 시체를 가마니에 돌돌 말아 묘역과 인근 산지로 옮겨 묻었다고 했다. 당시 그는 11살이었고, 주검이 된 아이들 역시 8~13살에 불과했다.

안 부회장은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맞아 죽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였다"며 "우리들끼리 시체를 거둬 이곳저곳에 묻었다"고 말했다. 안 부회장과 함께 끌려온 작은 형 영화(70) 씨도 "온갖 가혹행위 탓에 그땐 잘 몰랐지만, 제 손으로 친구를 묻었던 그 트라우마가 평생간다"고 호소했다.

선감학원은 부랑아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일제강점기부터 운용돼왔다. '소년판 삼청교육대'라는 별칭이 붙은 수용시설로, 1982년 폐쇄될 때까지 끌려온 아동은 4700여 명에 이른다. 이중 다수는 구타와 영양실조로 사망하거나 탈출하는 과정에서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들은 이름도 남지 않았다. 공식 기록상 사망자는 24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선감학원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최소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피해 사례들이 꾸준히 신고·축적됐고, 진실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이제 겨우 열렸다.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유해매장 추정지 시굴조사가 2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서 열린 가운데, 선감학원 인권침해 피해자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박헌우 인턴기자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을 위해 26일 유해 시굴에 들어갔다. 유해 매장 추정지는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 산(37-1)이다. 전국 인권침해사건 가운데 유일하게 유해발굴이 가능한 곳으로, 150여구가 묻혀있는 것으로 예상된다.

시굴 작업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개토제를 거행한 뒤 진행됐다. 추도사는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김훈 작가, 김영배 선감학원 피해자대책협의회장이 맡았다. 김 회장 역시 8살 때 경찰에게 이유 없이 붙잡혀 선감학원에 강제 입소돼 5년간 인권유린을 당했다.

김훈 작가는 "이런 야만적 행위가 우리 일상 도심지 한복판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며 "과거의 악과 화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오직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한데, 많은 사실이 확인돼 화해의 단초가 잡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수용된 소년들은 배고픔과 괴로움에 못이겨 탈출을 시도하다가 적합한 절차도 없이 죽어갔다"며 "버려진 존재로 방치돼 이름도 남겨지지 않은 어린 영혼에게 머리 숙여 추도한다"고 강조했다.

시굴은 호미 등을 이용해 3~4인이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당시 아동들이 묻었기 때문에 깊이는 40cm 정도 내로 추정된다./박헌우 인턴기자

시굴은 호미 등을 이용해 3~4인이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당시 아동들이 묻었기 때문에 깊이는 40cm 정도 내로 추정된다. 시간이 오래 지났고, 아동이라 유골이 발견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신발이나 치아, 뼛조각 등은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오는 30일까지 시굴 작업을 이어간다. 필요하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시굴 허가 면적은 900㎡이다. 유해와 유품이 발견되면 인류학적 감식을 거쳐 성별과 나이, 사망, 시점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오는 10월에는 시굴 결과와 함께 진실규명 결정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근식 위원장은 "유해 일부라도 확인해 진실을 좀 더 명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개토제를 열었다"며 "유해 발굴과 추모사업 추진 등 후속 조치를 관계 당국에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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