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충돌이 예상되는 단체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집회 신고를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연휴 기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인근에서 반일단체와 보수단체가 몸싸움을 벌이는 등 갈등이 심해지자 경찰도 고심에 빠졌다.
집회의 자유는 보장하면서도 단순 방해를 목적으로 한 시위를 실질적으로 관리할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조만간 시민단체 ‘반일행동’과 ‘신자유연대’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사건은 지난 11일 늦은 밤 두 단체가 광화문 인근 소녀상을 둘러싸고 물리적 다툼을 벌이면서 비롯됐다.
당일 오후 10시쯤 보수단체인 신자유연대는 소녀상 인근에서 정의기억연대 해체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같은 시각 바로 옆에서는 소녀상을 지키는 반일행동이 일본에 성노예 강제동원 사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감정이 격해진 두 단체 회원들이 물리적 충돌을 빚으며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밤 12시까지 2시간 넘게 싸움을 지속하며 집회 참가자 중 1명은 탈진해 병원에 옮겨지기도 했다.
경찰이 가까스로 만류하며 두 단체를 떼어놓았으나 이후에도 확성기를 통한 고성전은 이어졌다.
경찰은 두 단체 모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보고 곧 양측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이전부터 예견된 사태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해 말부터 신자유연대는 정의기억연대(정의연) 및 반일행동의 집회에 맞불을 놓기 위해 소녀상 인근에 먼저 집회 신고를 하고 자리를 선점해 왔다.
그런 탓에 정의연과 반일행동의 집회 장소는 소녀상 곁에서 약 50m 떨어진 인근 빌딩까지 차츰 밀려났다.
이후에도 확성기 등을 통한 비방전이 계속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의연의 진정을 받아들여 올해 1월 14일 종로경찰서장에 ‘보수단체의 모욕과 명예훼손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 중지 및 경고해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갈등이 오히려 거세지며 경찰도 난감한 입장이 됐다. 신자유연대의 시위가 반일행동과 정의연 등 다른 단체 집회를 방해하려는 목적이긴 해도 현행법상 그 역시 보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대법원의 2011년 판례에 따르면 집회를 제한하는 등의 조치는 ‘단체 규모에 맞지 않는 신고를 해놓고 수차례 집회를 개최하지 않은 경우’에만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중복 집회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다른 단체를 비방 혹은 방해하기 위해 집회를 열거나, 단체 간 마찰이 우려되면 경찰이 집회 장소 등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박원규 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 해외 대부분의 국가가 중복집회 역시 폭넓은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며 "독일의 경우 몸싸움 등 만일의 사태가 예상되면 경찰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장소나 시간 등을 조정할 수 있어 참고할 만하다"고 설명했다.
경찰도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중복 집회 관련 조항 개선을 검토 중이다.지난 4월 ‘중복집회의 평화적 관리를 위한 입법 개선 방안’ 연구용역도 발주한 상태다. 연구는 올해 11월쯤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시위를 방해할 목적으로 집회 신고를 남용하더라도, 선순위 집회를 현실적으로 보호할 방안이 없는 현실"이라며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와도 직결한 사안인 만큼 해외 입법례를 참고하는 등 면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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