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모의재판을 열고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했다. 지하철 승하차 시위 등으로 전장연이 수사를 받는 가운데, 경찰서 내 편의시설 미설치가 법률 위반인지 우선 따져보는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이다.
전장연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서울경찰청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 처벌' 국민참여 모의재판을 열었다. 피고인으로 지목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재판에서 판사 역할은 조영선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상모임 회장), 검사는 김남희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교수), 서울청장 측 변호인은 장서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공감)가 맡았다.
판사복을 입은 조 변호사는 "경찰서에 승강기 및 접근로 미설치가 '악의적 차별행위'(고의성·지속성·반복적·고의적 등)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라며 "장애인 등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미이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재판"이라고 설명했다.
모의재판에서 검사는 "서울청 산하 경찰서 중 3분의 1이 넘는 10곳에 승강기가 미설치돼 있다"며 "교통 약자들이 사법 행정절차와 서비스 이용에 막대한 불편함을 겪고 있음에도 수십년 동안 개선하지 않은 채 차별행위를 반복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 승강기 설치 비용은 10개 경찰서에 총 40억 원가량으로, 지난해 경찰 예산(11조9651억 원)의 0.03%에 불과하다며 규모상 지출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청장에 대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반면 김 청장 측 변호인은 "승강기, 접근로 설치는 비용 많이 드는데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 있는 경우 설치하지 않아도 차별로 보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며 "미설치로 인한 장애인의 피해 규모도 심각하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1층에 별도 조사실을 마련했고, (승강기가 있는) 다른 경찰서에서도 조사가 가능하다. 편의시설 설치는 중앙행정기관장인 행정안전부 장관이 책임져야지 피고인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은 억울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재판부는 휴정을 한 뒤 배심원의 의견을 들었고, 김 청장에게 벌금 3000만 원을 선고했다. 모의재판에 나온 배심원 10명도 만장일치로 김 청장에 대한 유죄 의견을 내놨다.
재판부는 "장애인편의법 제정 후 24년이 지난 지금까지 승강기가 설치되지 않은 건 과도한 부담이나 곤란한 사정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고의성과 악의성이 충분히 고려된다"고 말했다.
또 "서울청장이 서울 지역 소관사무를 관장하기 때문에 차별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며 "피고인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지 않은 점은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모든 책임을 피고인에게만 지울 수 없다는 부분을 참작해 양형을 결정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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