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이현 기자] "구해야겠다는 것 말고 다른 생각은 안 들었어요."
표세준 씨(27)는 망설이지 않았다. 지난 8일 9시쯤 서울 서초동 도로에서 불어난 물에 고립된 여성 운전자가 "살려달라"고 외치자, 표 씨는 곧바로 흙탕물로 뛰어들었다. 물은 턱 끝까지 찬 상황이었다.
때마침 물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주차금지판을 여성에게 쥐여준 그는 "꽉 붙잡고 있으면 물에 안 잠기니까 안고 계시라"며 다독였다. 그리고는 여성의 남편이 있는 반대편 차선까지 50m가량을 함께 헤엄쳐왔다.
표 씨는 11일 <더팩트>와 전화 인터뷰에서 "물이 계속 불어나고 있어서 오래 버틸 수 없었다"며 "밤이라 어두웠고, 흙탕물이라 밑이 보이지 않아 조금 무섭기도 했다. 침수된 차량이 많아 떠다니는 기름이 눈에 들어가서 앞이 안 보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나가다가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 돼 구조했을 뿐"이라고 했다. 표 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서울시장배 수영대회에서 자유형‧평형 금메달을 딴 적이 있다. "폭우 속 ‘의인’으로 불리는 게 부담스럽다"는 그는 국방홍보원 소속 공무원이기도 하다.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곳곳에 침수·인명 피해가 이어진 가운데, 표 씨와 같은 의인들이 조명되고 있다.
경기 용인시에 따르면 지난 8일 밤 11시 30분쯤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동막천이 범람하면서 주민 A씨가 차 안에 갇혔다. 폐암 수술 후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몸에 차고 있던 A씨는 물이 점점 차오르는 차 안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를 목격한 이강만 고기3통장은 지인 3명과 함께 급류를 뚫고 A씨 차로 접근했다. 이 통장이 곧바로 차량 뒷문을 열었고, A씨를 구조했다. A씨는 "이제 죽는구나 했는데 이들이 살려줬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상일 용인시장은 이 통장 등 4명에게 모범시민 표창장을 수여하기로 했다.
경기 의왕시에서는 새벽에 주민들이 합심해 물길을 뚫었다. KBS에 따르면 지난 8일 새벽 1시쯤 의왕시 한 아파트 단지 인근 산책로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인근 모락산의 흙이 폭우로 인해 흘러 내려오면서 물길이 막힌 것이다.
해당 아파트 경비실은 새벽 1시임에도 "산사태로 인해 산책로에 물이 차오르니, 도움을 줄 수 있는 주민분들은 도와달라"고 긴급 방송을 했다. 그러자 30~40명의 주민이 쓰레받기 등 도구를 들고 모였다고 한다. 이후 돌과 흙을 함께 치워내면서 상황은 금세 마무리됐다.
이번 폭우로 피해가 컸던 신림동 인근에도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현재 관악구, 동작구 내 거리 곳곳에는 침수된 가재도구와 쓰레기가 엉켜있고, 아직까지 물이 찬 지하주차장도 있다.
관악구청 관계자는 "민간 자원봉사자 500여 명과 구청 직원과 군인 등을 포함해 총 1700여 명이 현장에 투입돼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며 "도움을 주겠다는 민간단체나 봉사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 속 막힌 배수로와 빗물받이 덮개를 맨손으로 비워낸 의인들도 있다. 지난 8일 '강남역 슈퍼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한 남성은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 강남역 인근에서 맨손으로 빗물받이 덮개를 연 뒤 안에 쌓인 쓰레기 등을 건져내는 모습이 SNS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 9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남성이 경기 의정부시에서 맨손으로 배수구를 막은 쓰레기를 치우자 순식간에 물이 내려갔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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