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이현 기자] 철강업계에 만연한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포스코 노동자가 소송을 제기한 지 11년 만이다. 향후 불법파견 소송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란 평가과 함께 하청구조 개선에 기업이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사내하청 노동자 59명이 포스코를 상대로 낸 2건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28일 확정했다. 정년이 지난 노동자 4명만 원심을 취소하고 소를 각하했다.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15명은 2011년, 44명은 2016년에 소송을 제기했다. 파견근로자보호법상 허용되지 않는 원청의 직접 지휘·명령을 받았다며 직고용을 요구한 것이다. 이들은 크레인·지게차로 각 공정 사이에서 제철 관련 제품을 운반하는 업무를 2년 넘게 수행했다.
두 사건의 1심은 원고 패소로 판결했지만, 항소심은 모두 원고들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도 업무에 필요한 협력업체 직원 수와 작업량을 포스코가 정한 점 등을 근거로 원고와 피고 간 근로자 파견 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대법원은 ‘전산관리시스템(MES)’을 불법파견 근거로 인정했다. MES는 포스코가 작업 내용·장소·위치·순서 등 구체적인 공정계획을 입력하면 하청노동자들이 현장에서 확인 후 이행하는 시스템이다. 업무상 지휘·감독 수단으로 MES를 인정한 대법원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이 이번 판결을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MES를 통한 원청-하청 작업 공유는 국내 상당수 제조업체의 관행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국내 기업 환경이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파견 소송이 끊이지 않는 제조업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현재 한국GM, 현대제철,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은 불법파견 소송이 진행 중이다. 법원은 현대위아와 현대제철 등 최근 불법파견 소송에서 잇따라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포스코의 경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총 5건(이번 소송 제외)이다. 3, 4차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고 5~7차 소송은 1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금속노조는 8차 소송에 나설 하청 노동자를 모으고 있다. 1만5000여 명의 노동자 중 직군별로 불법파견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이번 판결은 향후 불법파견 소송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송과 상관없이 기업이 나서서 차별적 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원청인 기업은 하청노동자를 신분 격차가 있는 것처럼 활용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있다"며 "이 관행이 차별적인 요소이고, 전체 공정에서 노동자들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엄연한 법률적 판단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판결을 향후 법원이 인용한다 하더라도, 노동자가 긴시간 소모전을 또 해야한다면 문제"라며 "사회적 경종이 끊임없이 울리는 만큼 구조를 어느 정도 바꾸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된다. 사용자들이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청노동자의 직고용과 기업의 경쟁력은 무관하다는 비판도 있다.
정기호 민주노총 법률원장(변호사)은 "현대차가 하청노동자를 직고용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12년 전에 났었는데, 그때도 기업들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반발했다"며 "지금 현대차는 경쟁력이 떨어진 게 아니라 더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하청노동자를 통해 이익을 창출하려 하고, 굴지의 대기업이 하청노동자 사용이냐 아니냐로 경쟁력 자체가 달라진다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spe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