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사람" 박근혜 기소한 尹…전현희·한상혁 '부메랑'


공수처 수사 가능성은 낮아…"정치적 발언이더라도 내로남불"

정부 여당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면서 '제2의 블랙리스트'가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형사적 문제가 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다만 검사 시절과 비교해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다. 임기가 보장된 전현희 위원장과 한상혁 위원장의 사퇴를 압박했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전 위원장과 한 위원장은 '임기제 정무직'으로 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탄핵이나 금고 이상의 형, 징계, 장기간 심신쇠약 등의 사유가 아닌 한 신분은 보장된다. 장관급인 국민권익위원장과 방송통신위원장의 임기는 3년이다.

이들의 임기는 1년가량 남았는데 최근 정부 여당은 두 사람을 향해 공개적으로 거취를 압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게다가 기관 설립 이래 관례적으로 참석해오던 국무회의에도 참석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출근길에서 국무회의 배제 통보를 두고 "필수요원, 국무위원도 아닌 사람들이 와서 앉아있으면 다른 국무위원들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툭 터놓고 비공개 논의도 많이 하는데"라며 "굳이 올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임기에 대해선 "자기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겠나"라고 모호한 말을 남겼다.

권성동 원내대표의 발언은 더욱 직접적이다. 지난 16일 기자들과 만난 권 원내대표는 "정치철학이나 국정과제에 동의 안 하는 분들이다. 그러면 자리를 물러나는 게 정치 도의상으로 맞다고 본다. 법적으로 임기가 보장됐다고 하더라도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에 따르면 공공기관장의 임기는 3년으로 명시됐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산하기관장에게 사표 제출을 압박했다는 혐의로 징역 2년이 확정돼 복역 중이기도 하다. 검찰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도 비슷한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의 발언이 논란이 되는 이유다.

정부 여당이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의 거취를 압박하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선화·이동률 기자

다만 법조계에서는 공수처가 윤 대통령과 권 원내대표를 수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권성동 원내대표처럼 정치인이 한 말은 직권남용이 아닌 정치적 발언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원내대표는 인사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단 법적으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아 본격적인 수사로 이어지긴 어렵다. 공수처가 최근 윤석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무더기로 각하하는 점을 봐도 수사착수는 가능성이 낮다.

다만 형사적 문제를 떠나 유사한 사례를 수사해 기소한 경험이 있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도의적 비판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이 변호사는 "인사권자가 인사권을 남용해서 임기가 남은 사람에게 사퇴를 강요한 행위가 처벌됐다"며 "그 수사를 했던 윤 대통령이 비슷한 발언을 한 것은 정치적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내로남불로 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7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은 노태강 전 문화체육관광부 국장의 사직을 강요한 혐의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노 전 국장에게 "참 나쁜 사람"이라며 인사 조처를 지시해 직권남용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특검 수사팀장이었다.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 시절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공소유지도 사실상 지휘했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수사는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윤 대통령은 블랙리스트 수사가 '정치보복'이라는 일각의 지적을 두고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냐"며 검찰 수사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우회적으로 전 위원장과 한 위원장 사퇴를 압박한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상식적으로 사퇴를 종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사퇴하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대놓고 한 것인데 더 압박이 되고 모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현희 위원장과 한상혁 위원장은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입장이어서 불편한 동거는 지속될 전망이다. 전 위원장은 지난 18일 "법률에 정해진 공직자의 임기를 두고 거친 말이 오가고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법의 정신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위원장도 "최대한 성실히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겠다"며 사퇴를 일축했다.


sejungkim@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