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서울대 교수에게 법원이 기소 2년여 만에 국민참여재판을 거쳐 무죄를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승정 부장판사)는 8일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역시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유·무죄가 매우 다퉈진 사건으로, 다수의 증거 내용이 각각 달라서 고민이 많이 되는 사건이었다. 피해자의 신고 및 고소 경위에 대해서도 많은 검토가 필요한 사건이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A 씨가 제자 B 씨의 정수리를 쓰다듬는 방식으로 추행했다는 혐의에 대해 "검사가 피고인이 유죄라는 걸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에 비춰 피해자의 불쾌감은 인정되지만 (피고인의 행위를) 강제추행죄에서 정하는 추행으로 볼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다리를 추행하고 강제로 팔짱을 끼게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피해자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데 일관되지 않고 번복되는 점, 사건 직후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등에 비춰볼 때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봤다.
재판부는 또 "배심원 논의 내용과 평결 근거를 들으면서 배심원 여러분께서 다각도로 아주 심도 있게 논의하셨음을 알았다. 일반 국민이 가진 아주 높은 수준의 법 인식에 상당히 놀랐고 많이 배웠다"며 "법관으로서 여러분께 경의를 표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제게 아주 소중하고 뜻깊은 시간이었으며 자랑스럽게 생각될 것 같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선고 직후 방청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안도의 한숨도 있었지만 판결에 대한 분노가 뒤섞인 탄식도 곳곳에서 들렸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A 씨 측 변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부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 A 씨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며 무죄 판결 공시를 원한다고 밝혔다.
이 사건 재판은 A 씨의 요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A 씨는 2020년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했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기일이 미뤄지다 약 2년 만에 재판이 열렸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이 배심원으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형사재판제도다. 배심원이 된 국민은 법정 공방을 지켜본 뒤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평결을 내리고 적정한 형을 토의하면 재판부가 이를 참고해 판결을 선고하게 된다.
이날 판결은 사건 발생 7년여 만, A 씨가 기소된 지는 2년여 만에 꼬박 이틀 동안 심리한 끝에 나왔다. 국민참여재판은 원칙적으로 매일 재판을 진행해 1~3일 안에 재판을 마치도록 운영한다. 이번 사건은 전날(7일) 오전 11시부터 늦은 오후까지, 이날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6시 10분경까지 재판이 진행됐다. 배심원 평의 후 선고는 오후 10시 5분께 이뤄졌다.
A 씨는 2015~2017년 해외 학회에 동행한 제자 B 씨의 정수리를 쓰다듬거나, 다리를 만지고 강제로 팔짱을 끼는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강제추행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B 씨는 2019년 A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작성해 피해 사실을 알렸고, 서울대는 교원징계위원회 결과에 따라 같은 해 8월 A 씨를 해임 처분했다. 이듬해 4월 A 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피고인은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허위라고 주장하며 마치 자신이 피해자를 위하는 마음에서 한 행위인양 호도하고 있다"며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ilraoh@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