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주현웅 기자] 정부의 외면으로 287일 동안 공항살이를 하다 가까스로 난민 인정을 받은 ‘콩고 루렌도 가족’의 악몽이 되풀이되고 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내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심사마저 거부된 에티오피아인들이 잘 공간과 의식주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인천국제공항 안에서 한 달 넘게 노숙 중이다. 법무부와 민간 항공사가 서로 관리 책임을 미루며 인간으로서 권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인천공항에는 에티오피아 국적의 남성 5명이 제한된 보안 구역을 배회하며 생활하고 있다. 지난달 8일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을 받은 뒤로 47일째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내전을 피해 한국에 왔지만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 등 사실상 방치 상태에 놓여있다.
통상 입국 혹은 난민 신청이 거부되면 출국 이전까지는 공항 내 숙식이 가능한 출국대기실에서 지낸다. 그러나 이 남성들은 출국대기실 운영 주체인 항공사운영위원회(AOC)에서 입실을 허락받지 못했다. 항공사 측이 비용 지원 등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항터미널에서 지내게 된 이들은 법무부 소속 보안관리과가 지키고 있다. 3층의 보안 구역에서 동선의 제약과 감시를 받으며 생활 중이다. 음식은 물론 수면 공간 등 기본 편의 사항은 일절 제공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주 3회(월·수·금) 샤워’만 허용됐다.
공항 직원도 이들의 열악한 환경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인천공항의 한 직원은 "백번 양보해서 식사 미제공은 세금 문제로 이해하더라도, 정상적인 샤워 공간과 잘 곳 정도는 마련돼야 하지 않겠나"라며 "주 3회 씻을 수 있다지만 장소가 장애인 화장실을 개조해 만든 간이샤워실인 데다, 잠은 늘 아무 의자나 바닥에 누워 청하고 있는 상황"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에티오피아는 6·25전쟁에 참전해 우리나라를 도운 국가인데, 내전을 피해 온 청년들이 한국에서 이런 대접을 받는 모습을 보니 무척 씁쓸하다"고 부연했다.
에티오피아인들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공항 생활을 하며 "배고프고 목이 마르다"면서 "화장실 앞에서 먹는 식수가 괜찮은 것인지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내전 격전지인 '암하라' 출신이라고 한다. 지난해 외교부가 우리 국민의 철수 및 여행 취소를 권고한 지역이다.
이들은 난민심사 불회부 결정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대리인 이상현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루렌도 가족 사건 후 1년도 안 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에티오피아 내전은 유엔난민기구가 별도의 성명을 냈을 정도로 심각한 사태인데, 우리 정부는 난민심사의 기회마저 안 주면서 인권까지 도외시하고 방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법무부 측은 에티오피아인들이 입국 불허 이후에 비로소 난민 신청을 했다는 점 등을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입국·난민 불허자의 기본권 논란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이들을 관리할 직원 대부분이 해고 위기를 겪고 있어서다.
지난해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이 계기다. 현재 AOC가 숙식을 제공하며 운영·관리 중인 출국대기실을 올해 8월부터는 법무부가 직접 맡는다는 내용이다. 이번처럼 관리 주체가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입실을 불허하는 사례는 줄어들 것으로 보이지만, 법무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운영 규모를 축소할 방침이다. 코로나 사태 직전인 2019년 4월까지 42명이 일했던 곳인데 단 15명만 고용승계한다는 계획이다.
이 변호사는 "지금의 출국대기실도 냉난방이 잘 안 갖춰지고 과밀 현상이 심해 문제가 심각하다"며 "오히려 출국대기실에서 확장된 형태의 출국대기소를 별도로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혜진 인천공항 출국대기실 팀장은 "지난 이틀 동안에만 80여 명을 본국으로 보냈고, 30명가량을 새로 받았다"며 "출국을 앞두고 집단으로 소란을 피우는 일도 잦은데, 이를 불과 2~4명 정도의 직원들이 밤새 교대하며 관리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코로나에 따른 승객감소를 인력 구조조정의 근거로 밝혔으나, 지금 상황은 승객 숫자가 오히려 증가 추세라 정부 논리와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며 "실태를 정상화하려면 되레 40~60명 수준까지 직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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