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요청할 뜻을 보이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형평성을 고려한 긍정적 의견도 있지만 논의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맞선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이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듭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과의 공식회동에서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을 공식 건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비자금 의혹과 삼성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20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벌금 130억원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수사를 지휘해 이 전 대통령을 재판에 넘겼다. 윤 당선인 측은 '국민통합' 취지에서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전 대통령 사면논의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가 뇌물이나 횡령 등 중범죄인데다 형기의 5분의 1도 채우지 않았고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책임자였던 윤 당선인이 사면을 요청하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승수 변호사(세금잡아라공동대표)는 "지금처럼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가 논의된다면 일반 국민은 죄를 지으면 처벌받고 권력이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사면받는 셈이 된다. 사법정의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금 특별히 (이 전 대통령을) 사면해야할 이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은 17년형을 확정받았는데 사면을 언급하기엔 실질적 복역 기간이 너무 짧다"면서 "윤 당선인이 자신의 임기 동안 해결하는 것이 맞다. 지금 정부에 건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전 대통령은 2018년 4월 구속됐으나 보석과 재구속을 반복해 실질적 복역 기간은 2년여 정도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수사를 지휘한 윤 당선인이 사면을 건의하는 것은 '정치적 의도'라고 지적했다. 민변은 "당선인 측은 '국민통합과 화합'을 주장하나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며 "임기 중 대통령의 권한을 활용해 뇌물을 받고 사익을 추구한 범죄를 용인하고, 사면함으로써 국민통합과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를 모독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실제 윤 당선인은 선거 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선 후 정치보복 가능성을 묻자 "제가 문재인 정부 초기에 (수사)했던 게 대통령의 지령을 받아 보복한 것이었냐"고 답했다. 간섭 없이 수사 전권을 행사해 전직 대통령을 기소한 당사자가 사면을 요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형평성에 맞게 이 전 대통령의 사면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사회통합 명분으로 문재인 정부에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이 맞다는 취지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두 전직 대통령 모두 중형을 선고받았는데 박 전 대통령은 지난 연말 사면됐다. 새 정부가 새롭게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차원이라면 현 정부에서 이 전 대통령도 사면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 모두 유죄를 확정받았고, 사회통합 차원에서 이 전 대통령도 같이 사면하는 것이 정치적 논란을 없애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을 지지하는 여론도 호전된 것으로 보인다. 판사 출신인 이충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한 조사 결과 이 전 대통령 사면 찬성 46.4%, 반대 49.1%를 기록해 오차범위(±3.1%) 내로 나타났다. 이 조사는 대선 이후인 지난 14일~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다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7년 3월 31일 구속된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긴 5년 가까이 복역했고 건강 악화가 사면에 크게 작용했다는 차이는 있다. 죄질에서도 박 전 대통령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가 대부분 뇌물을 받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개인 재산상 이익을 위해 직접 받은 경우였다.
이번 기회에 사면 논란이 나오지 않도록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하승수 변호사는 "대통령의 사면권은 매우 엄격하게 행사돼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사면되면 '전직 대통령 같은 권력자들은 죄를 지어도 또 사면된다'는 잘못된 관행이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한규 변호사도 "권력형 비리나 선거법 위반, 또는 성범죄와 같은 사회적 지탄을 받는 범죄에 한해서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폐지까진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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