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남욱·정영학에 150억 요구' 정재창, 42억 차명 부동산 정황


SPC 설립 직후 땅 매입…"설립 주체 못 밝혀"

부동산컨설팅 업자 정재창(53) 씨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부동산을 취득하는 등 재산을 차명으로 관리 중이란 증언이 나왔다. 실제 페이퍼컴퍼니로 의심받는 사무실에 가보니 인형뽑기 가게였다./주현웅 기자

[더팩트ㅣ주현웅 기자] 대장동 사업의 핵심 남욱(49) 변호사와 정영학(54) 회계사의 약점을 잡고 돈을 받아냈다는 의혹을 받는 부동산컨설팅업자 정재창(53) 씨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부동산을 차명으로 관리하고 있는 정황이 발견됐다.

22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문제가 된 땅은 경북 김천시 율곡동 1914.5㎡ 규모의 한 대지다. KTX 김천구미역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 지역에선 금싸라기 땅으로 불린다. ‘봄의별’이라는 기업이 작년 11월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쳤으며 매매가는 42억 원이다.

지난해 8월 설립된 이 회사는 등기부등본상 부동산개발업체로 신고됐다. 자본금은 1000만 원으로 작은 편이지만 설립 3달 만에 빚 없이 이 땅을 매입했다.

문제는 회사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기업정보를 찾아볼 수 없어 업계에선 서류로만 존재하는 페이퍼 컴퍼니, 즉 특수목적법인(SPC)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소유주가 따로 있다는 뜻이다.

최근 <더팩트>가 회사 주소지로 등록된 서울 마곡동 사무실에 갔을 때도 봄의별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자리에는 인형뽑기 가게가 있었다. 인근 상인들은 "인형뽑기 가게가 있기 전에는 분양홍보관을 운영한 다른 업체가 있었다"며 "봄의별이란 회사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업계 인물들은 이름이 비슷한 부동산컨설팅업체 '봄이든'을 실소유주로 지목한다. 정 씨가 2007년부터 배우자와 함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정 씨의 한 지인은 "봄의별 사내이사로 등기된 조모 씨는 분양대행업자인데, 정씨의 친한 동생이고 골프 모임에 함께 다니는 등 매우 가까운 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씨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작년 4월 김만배 씨 등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는 등 대장동 문제가 공론화할 조짐을 보이자 환수될 가능성이 있는 수익을 숨기기 위해 김천 땅의 명의를 조 씨 이름으로 돌려 놓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해당 부지는 봄의별이 소유권을 얻기 전까지 개인 5명이 20%씩 나눠 가진 상태였다. 신생 법인이 설립 3개월 만에 이들 전부를 상대로 협의를 거쳐 매매계약을 맺고 계약금과 중도금 및 잔금 등을 치렀을 가능성은 적다. 이 때문에 매입 작업 초반에는 계약 주체가 따로 있었으며 도중에 명의자를 바꿨을 가능성이 있다. 통상적인 SPC는 개별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사전에 설립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봄의별 같은 사례는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또 다른 지인은 "재작년에 4억 원씩 두 차례에 걸쳐 8억 원이 들어갔고, 지난해에 남은 금액을 지불해 소유권 이전까지 약 1년이 소요됐다"며 "최초 거래계약 신고 당시엔 봄이든 혹은 정 씨 이름으로 돼 있다가 등기 전 잔금을 치르면서 명의자가 봄의별로 변경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재창 씨가 대표로 있는 봄이든 사옥 전경. 더팩트가 방문했을 당시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주현웅 기자

봄의별 측은 자신들이 SPC란 점은 인정했다. 다만 ‘봄이든과의 연관성’과 '설립 취지' 등을 묻는 질문에 신경질적 반응이 돌아왔다. 봄의별 관계자는 "누가 만들었는지가 왜 궁금하냐"며 "대답해야 할 의무가 없으니 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김천 땅을 위탁 관리하고 있는 대신자산신탁은 답변을 거부했다. 이곳 관계자는 "특수목적법인을 누가 설립했는지에 관한 정보는 대외비"라며 "기업 입장에서 민감한 사실이 될 수 있어 말하기 곤란하다"고 전했다.

김천시 측도 "개인과 기업의 경영상,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다. 관련 사실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더팩트>는 정 씨에게 봄의별 설립 여부 등을 질문하려 봄이든을 직접 방문하고 통화 시도 및 메시지를 남겼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정 씨는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의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에게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 준 뇌물을 폭로하겠다’며 150억 원을 요구한 뒤 120억 원을 받았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한국일보 등 보도에 따르면 2020년 4월 녹취록에서 정 회계사는 "(정재창이) 계속 협박하면 저하고 남욱이가 내놓을 줄 안다"며 "왜냐면 합의해 놓고 한 번 더 화를 내니까 150억 원으로 늘어났다"고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전 기자에게 토로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 같은해 10월에는 김 씨가 "정재창은 얼마 받으면 되냐"는 질문에 정 회계사가 "세전 한 150개(억)"라고 답한 음성도 있다.

정씨를 공갈 및 협박 혐의로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최근 사건을 경기남부경찰청에 이송했다. 혐의가 인정되면 그가 받은 돈은 범죄수익으로 분류돼 환수조치 대상이다.

정 씨는 대장동 개발의 전초기지로 꼽히는 2013년 성남 위례지구 개발사업에서 가장 큰 돈을 번 사람으로 알려졌다. 시행사 푸른위례프로젝트의 자산관리사 위례자산관리의 대주주였다. 애초 남 변호사 등과 가까운 사이로 대장동 사업에도 참여하려 했으나 전망을 어둡게 내다보고 불참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장동이 예상 밖 수익을 발생시키면서 남 변호사와 정 회계사를 협박해 돈을 챙겼다는 주장이 나온다.

chesco12@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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