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정용석 기자] 서울의 한 무용단에서 무용수들이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으나, 사측의 일방적 지시를 받고 부당한 근로 조건에 놓였다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했다.
9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한 무용단에서 2년 동안 일했던 무용수 A씨는 최근 퇴직금 정산이 어렵다는 사측의 통보를 받았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 지시를 따라 근무를 했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프리랜서’ 문구가 발목을 잡았다.
A씨는 지난 2019년 한국민속촌에서 일할 공연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현재 무용단에서 일하게 됐다. 공고에 명시된 조건은 급여 180만 원, 근무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였다.
그는 정규직 무용수 일을 구했다고 생각했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사측은 프리랜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A씨가 계약한 내용대로라면 민속촌의 무용수들은 해당 정규공연 일정만 소화하면 된다.
하지만 공연을 제외한 기타 잡무를 강요받기 일쑤였다. 개인 사업자로 간주 돼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지만, 실제로 일하는 방식은 임금 노동자와 비슷했다.
공연시간 사이 남는 시간에는 청소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무용팀장의 연습 지시에 따라 무용수들끼리 모여서 공연을 연습하는 날도 많았다고 한다.
A씨는 "공연장 청소뿐만 아니라 화장실 청소까지 무용수들 몫이었다"며 "눈이 오는 날에는 제설작업에 투입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A씨는 5개월 동안 다른 무용수를 대체해 야간공연에 투입됐으나 제대로 쉬지 못했고, 공황장애 진단도 받았다. 프리랜서였지만 한 주에 2일만 쉴 수 있다는 계약 내용 때문에 다른 무용수들이 대신 A씨의 공연 일정에 참여해 일주일간 쉴 수 있었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무용업계에서 흔하다는 점이다. 특정 소속사나 공공 무용단(시립 또는 도립)에 소속된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용수는 프리랜서다.
<더팩트>가 만난 또 다른 무용수 B씨는 계약서 작성도 없이 일을 해왔다. 그는 "근무기간 내내 계약서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며 "퇴사 의사를 밝힌 뒤에야 5일짜리 계약서를 받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전문무용수지원센터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무용수가 계약서를 작성하고 공연에 참여하는 비율은 37.1%에 그쳤다. 구두계약이 11%, 작성하지 않은 사람이 45.9%, 무응답이 6%였다.
우선 A씨는 퇴사 후 동료 무용수 3명과 사측에 퇴직금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업무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기 때문에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12월 노동부는 지상파 방송3사(KBS·MBC·SBS) 방송작가 152명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방송작가들이 위탁계약에 따른 원고 집필 업무 외에 사측의 요청으로 다른 업무도 함께 수행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해당 무용단은 "프리랜서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문제없다"며 "청소 등을 지시한 일이 있긴 하나 이는 (무용수들이)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밝혔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프리랜서 계약이라는 건 어떠한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한다. 무용수라면 공연이라는 업무 완수만 하면 된다"며 "공연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지시받아 해왔다면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로부터 지휘, 감독을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근로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며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지만 퇴직금 지급 의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