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가구 천만 시대, 낯선 사람의 위패를 들었다


'무연고자의 꽤 친밀한 장례식' 취재기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을 취재하며 1월 마지막주를 보냈다. 외롭다고 쓰지 말아달라는 나눔과 나눔 팀장님의 당부를 현장에 가서야 이해했다. 고인은 외롭지 않았다. /김세정 기자

<더팩트>는 지난달 31일 기사 '법적 가족 아닌 사랑은 남남인가요…가는 길 쓸쓸한 1인 가구'에서 무연고자들을 위한 공공장례의 현주소를 다뤘다. 하지만 무연고자의 가는 길은 상상과는 달랐다. 피를 나눴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고픈 진심이 있다면 따뜻했다. 생면부지였지만 낯설지 않았던 '채씨'의 위패를 든 취재기자의 기록을 남긴다. <편집자주>

[더팩트ㅣ김미루 인턴기자] "외롭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무연고자 장례를 주관하는 '나눔과나눔' 팀장은 취재 내내 당부했다. 그 말을 서울시립승화원에 가서야 이해했다. 고인은 외롭지 않았다. 빈소에는 친구가 오고 가족이 왔다.

지난달 25일, 무연고자라던 고인 장례식에는 60대 남성 추모객이 왔다. 남성은 어물쩍 서 있던 나를 경계했다. 낯선 사람에게서 친구를 지키려는 듯했다. 영정을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떨궜다. 친구의 위패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화장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장례식장 한켠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 게시판에서 추모객은 고인을 엄마, 아빠로 불렀다. '할아버지, 올라가서는 고스톱 많이 치세요'라거나 '할머니, 키워줘서 고마워'라는 문구도 있었다.

말 그대로 '연고 있는 무연고자'의 장례식이었다. '홍철 없는 홍철팀'이라는 무한도전의 밈(meme) 마냥 '연고 있는 무연고자'라는 말은 역설이었다. 고인이 외롭겠다는 짐작은 절로 거두어졌다. 그러자 현행법과 행정절차가 담아내지 못한 사각지대가 보였다.

2001년 시행된 장사법은 그야말로 구식이었다. 고인 사망 시 배우자에게 장례를 치를 권리를 우선 부여한다. 다음은 자녀다. 철저히 친족 중심이다. 이들이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시신을 위임하면, 고인은 무연고자로 분류된다. 배우자에게만 장례 위임 의사를 묻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배우자의 역할이 너무나도 큰 셈이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던 대중가요 노랫말에 때때로 공감했다. "제때 결혼하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애써 흘려 들어왔다. 하지만 무연고자 장례식에서 본 법의 틈새에 위기감이 찾아왔다. 들여다보면 세상에 내 일 같지 않은 일은 없다.

친구가 장례를 치러주려면 숱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친구뿐만 아니라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 조카, 이웃 모두가 그렇다. /김세정 기자

2020년 12월 1인가구가 처음으로 900만명을 돌파했다. 그중에는 연고가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전 연고가 없던 사망자에게도 마지막 길에는 친밀한 추모가 함께했으면 한다. 사람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일이 얼마나 따뜻한 일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1월27일 다시 서울시립승화원. 1969년생 무연고 사망자 채모 씨의 장례식에서 위패를 들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유명 상조회사 직원은 없어도 해피엔딩 측 장례지도사가 있었다. 거창한 근조화환은 없어도 고인을 추모하는 포스트잇 글귀는 따뜻했다. 무연고 공영장례는 시민 모두가 참여해 추모할 수 있다.

무연고자도 친밀한 장례식을 치르려면 장사법, 민법, 가족관계등록법이 개정돼야 한다.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miro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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